퇴근하고 집에 오니 빨래가 널려있는 건조대가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아, 내가 어제(일요일) 빨래를 널었지 - 보통 토요일에 널고 일요일에 빨래를 걷는다 - 미처 넣는 것을 잊어버린 물티슈처럼 바싹 마른빨래는 제법 옷의 형상을 갖추고 있다. 일단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옷을 접는데 뭔가 이상했다. 이 빨래를 접는 사람이 오롯이 나 혼자란 사실이었다.
내가 세탁기를 돌린 후 건조대를 펼치면 어디선가 반려인이 와서 함께 빨래를 넌다. 그가 같이하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 그가 없을 때 내가 세탁기를 돌렸거나 다른 일을 하러 집을 비웠거나. 우린 빨래 널고 걷기를 대개 같이한다. 그러니 혼자 빨래를 개면서 어색하다고 느낀 건 당연하다. 가사노동 시,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나는 이것, 당신은 저것을 하라고 말한 적은 없다. 다만 가사노동이 어찌 됐든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중에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런 게 반복되면 집 안에서도 내 일이 생기는데, 누군가 부재하거나 그걸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 땐 부재한 멤버의 파트를 불러주는 아이돌처럼 남은 사람이 그 일을 한다.
가사노동은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끝없이 반복된다. 열심히 해도 태가 나지 않는데, 안 하면 이상하게 바로 알아채는 게 바로 가사노동이다. 나는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청소기를 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누구도 문제 삼지 않지만, 바닥의 밟히는 먼지를 용인하지 못하는 데다 숙제를 하지 않은 채 놀지 못하는 아이였기에 청소기를 돌리지 않고는 불안해서 제대로 쉬지 못한다.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하면, 반려인은 아점을 준비한다. 누군가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을 보고만 있는 건 어쩐지 이상하다.
중요한 건 바로 혼자 하는 가사노동을 어색한 상황으로 만드는 것. 우리의 가사 노동 원칙은 원하는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옷 정리가 잘 안 된 것처럼 보이면,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한다. 근데 지적만 하고 본인은 그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면 지적할 수 없다. 서로가 문제라고 느끼는 지점과 각자가 견디고 살아온 방식이 다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분기점에 상대방을 데려오기는 미적분처럼 어렵기도 하거니와 나는 항상 괜찮았는데 이게 왜 문제가 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제로 삼을 때, 그것은 나한테만 해당할 수 있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직접 시행한다고 생각하면 의외로 어렵지 않다.
부모님에게 얹혀살 때는 불편하거나 어려운 게 있어도 누군가 그 일을 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이 있는데, 내 집이 되고선 '내가 아니면 누가 하지?’ 생각한다. 배고픈 이가 씨를 뿌리듯 더 못 견디는 사람이 하되, 누군가 무언갈 시작하면 같이 몸을 움직이기. 이 정도면 매일 돌을 굴려도 함께하기에 견딜 수 있으며 노동 뒤 맛있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주말을 본격적으로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