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순간을 위해 참아왔구나.
매운 비빔메밀 한 그릇 세숫대야만 한 점심 혼자 뚝딱하고
직전에는 아픈 잇몸을 꾹꾹 누르는 치과 치료를 한시간 견뎠고
결막염 다 나았다는 기쁜 소식 듣고자 한시간 기다린 안과로부터, 지금의 아이스 아인슈페너가 시작됐다.
카페 밖은 여름이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테니스 코트장이 보인다.
저기는 여전히 여름이구나. 내가 있었을 때부터 없을 때까지, 없을 때부터 오늘까지 저기는 언제나 태양 가득 담아낸 코트였구나.
오래된 익숙한 장소에 오면 얻게되는 안도감은
내가 나인 적이 없던 순간들을 젖혀내고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하기 때문이다.
길 건너 태양볕 아래에 서있던 여고생이던 나와
돌담길 거닐어 시립미술관에 가던 미대생이던 나와
지금 아인슈페너에 감격하는 나까지가
모두 온전하다고 알려준다.
단지 육아를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의 인생의 육중한 변화만이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어떤 하루 중에도
사소하게도 나는 나를 잃고, 우리는 우리를 잃기 때문에, 내가 나인 채로 있는 순간이 필요하다.
어떤 단절감이라도 위태롭다.
내가 느낀 것처럼 당신도 그랬겠지
그럴때 어떻게 해야할지
각자의 해답이 있기를 기도한다.
나보다 당신이 나을지 모른다.
나는 적어도 여러번 길을 잃었다.
수차례 미쳐보다 다시 온 것 같다. 크게 미친 건 아니라도 내 일상은 푸딩처럼 무르고 여려서
매일 다른 길을 새로 달리는 외발 자전거처럼 연약하다.
어제 심은 작은 화분의 콩알처럼
볕이 길면 마르고 넘치는 물엔 흙이 날아가 금새 고갈되는 정서의 나보다,
당신은 더 나을거다.
그저, 급히 서울역으로 향하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어 걸어나가다 여기 아인슈페너를 시킨 나를 칭찬한 뿐, 나를 위해 했던 친절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