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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Oct 30. 2022

펀칭맨

초등학교 4학년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반에 펀칭맨이 있다는 사실은 3주가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 어린 친구들을 만나게 될 때. 특히 저학년의 경우 준비할 과정이 많다. 호감을 살 젤리도 필요하고 아이들이 툭 던지는 질문과 성향을 파악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글씨체도 외우고 한 번 웃어줄 거 여섯 번은 웃어주면서 반응한다. 쉽게 떨어뜨리는 필통과 잘게 쪼갠 쓰레기를 주워가면서 주변을 정리하며 수업한다. 아이들도 적당히 긴장한 듯 보이지만 호기심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들은 CCTV가 있는지 확인하고 사각지대는 어딘지 찾아낸다. 어딘가에 비상통로가 있다면 문을 딸 수 있는지 시도하고, 혹은 비밀의 통로가 있는지 벽을 여러차례 두드린다. 자신이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선생님은 알고 있는지 싶어 궁금해했다.


그런 아이들 속에서도 4학년 준수는 자기소개부터 남달랐다.


"저는 좋아하는 게 제 쌍둥이 동생 패, (이때 잠시 뜸을 들이고) 때리는 거요." 라고 답했다. 


거친 말투로 주변을 제압하는 걸 즐기는 듯 보였으나 그의 평소 말투에서는 영민함도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자리를 비우자 진실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쌤. 저번에 준수가 펀칭기로 티셔츠를 마구 뚫고 갔어요."


사무용 4공 펀치로 티셔츠를 뚫을 수 있나? 기껏해야 자국이 남은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자 민우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차피 뚫어봤자 엄마는 모른대요. 디자인이라고 하면 된대요."


주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이 문제였다. 곧이어 준수는 쌍둥이 동생과 함께 해맑게 도착했다. 포켓몬스터 티셔츠를 입은 그는 에너지가 넘쳐 보였고 눌린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귀엽게도 느껴졌다. 저번 시간보다 차분하게 수업을 들었으며 때로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면서 평소 자신이 배운 지식을 자랑했다.


쉬는 시간.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들은 모두 모여 4공 펀치를 잡고 신나게 놀았다. 


저마다 휴지에 한 번, 교재에 한 번, 준수는 이번에도 깨끗한 티셔츠에 세 네 번을 반복하며 찍었고......선명하게 뚫린 펀칭 티셔츠. (4공 펀치의 위력을 알고 싶지 않았는데요.) 펀칭맨은 주변 아이들을 의식하며 보란듯이 누르다가 뒤에 서 있던 선생님을 발견하지 못한 채,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반 투명한 통 속에 들어가 있는 회색 티셔츠의 단면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가 펀칭맨이 된 순간이다.


펀칭맨은 엄마에게 거짓말 하겠다고 말했다. 


"넘어졌다고 할 거예요."


"너 저번에도 그런 거였어?"


쌍둥이 동생이 놀라워했다.


"난 거짓말 안 할 건데."


내가 단호하게 답했다.


그는 의기소침해져 물었다. 


"왜 거짓말을 하면 안 되나요?"


아이의 마음이 투명하게 보이면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나 어른의 얼굴은 감출 수 있는 법이다. 펀칭맨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뚫린 구멍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넣고 몇 번 매만지다가 근사한 겉옷을 걸쳤다. 방금 전까지의 일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의 주장대로 그렇게 디자인 된 옷처럼 보였으니까. 


다행히도 부모는 전화를 받고 웃었다. 옷을 뚫은 건 몰랐다 했지만, 종종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의 미적 감각은 훗날 인정 받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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