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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Oct 30. 2022

자러 갈 시간이야

대학수업 X 초등수업

어제는 숭실대학교 교양수업이었다. "문예창작"이란 수업인데 이름에 문예창작이 붙어 있어 정작 문예창작 전공은 들을 수 없는 교양 수업이다. 다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으로 왔다고 한다. 시간과 학점에 맞게 온 학생들도 있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척 하는 것도 나의 일이다. 그날은 이원 시인의 산문집 『산책 안에 담은 것들』과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을 갖고 산책이 시가 되는 순간, 시가 산책이 되는 순간을 이야기했다. 


강의를 하는 동안 천장에 작은 빛이 일렁였다. 반사된 빛이 작게 웅크렸다가 다시 재빠르게 움직이고,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아무도 그 빛을 보지 않았다. 말을 멈추지 않고 그 빛의 움직임을 봤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6학년 남학생들이 가득한 반은 언제나 시끄럽고 활기찼다. 마냥 시끄럽다고 할 수 없는 게 그들은 제법 날카로운 질문과 근거를 갖고 올 수 있는 학년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들이 미는 걸 시끄럽다는 말로 덮을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그 소리가 겹쳐 울창한 숲처럼 퍼질 때, 숲에서 메아리치는 소리를 마냥 듣고 있던 내 귀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넘기고 싶다. 


칠판에 글을 적을 때, 그들은 집중한다. 판서를 하는 동안에는 조용한 걸 보니 두 가지를 동시에 잘 하는 학생들은 드문 모양이다. 나는 흰 칠판에 일렁이는 둥근 빛을 보았다. 창문을 통해 반사된 빛은 마치 춤을 추듯이 글씨를 따라왔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텀블링하듯 돌아왔다. 


"얘가 춤추는 것 같다."


아이들은 그 말에 반응했다. 우리는 어떻게 저 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는지, 어디서 반사된 빛인지 추적하고 추측하고 그러면서도 적을 것을 적었다. 빛의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공부하는 아이들. 우리의 말에 움직이는 빛. 빛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빛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멀어졌을 때, 나는 인사했다.


"잘가."


순간의 우연이었겠지만, 인사 이후 빛은 사라졌다. 아이들이 소리 질렀다. 


"죽었어!"


도대체, 어째서. 죽은 거야. 갑자기 절규하는 아이들. 


내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을 때 현우가 말했다.


"자러 간 거야."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쟤는 오전부터 일찍 와 있었어. 새벽에 왔으니, 이제 다시 자러 갈 시간인 거지."


나는 빈 강의실에 홀로 들어와 춤을 추면서 놀고 있을 한 줄기 빛을 떠올렸다. 


"내일 또 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작 너희가 안 오는 날이잖아."


"또 올 거예요."


우리는 빛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말했다. 이것은 동화가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장점은 바로 이런 아름다운 순간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거다. 그 순간을 아이들이 잊을 때쯤, 문득 떠올린다. 


대학 강의실에서 움직이는 작은 빛, 통통 튕기듯이 돌아다니는 빛의 탱탱볼을 구경하면서. 빛이 산책이 되는 순간, 산책이 빛이 되는 순간을 떠올렸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와 나는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잠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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