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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Oct 30. 2022

행복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초등학교 6학년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대학생 시절에 읽은 책이다. 『약지의 표본』,『슈거타임』,『임신캘린더』 등 작가의 글을 연달아 읽으면서 하나의 흐름을 구경하듯이 훑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을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러했다.




박사는 교통사고로 인해 1975년까지의 기억만 간직하고 추억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80분. 신발 사이즈를 묻다가 220과 284는 우애수라고 감탄을 하는, 숫자로 세상을 이해하고 다가가는 박사. 


그는 말한다. "숫자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 걸 방해하다니. 그건 화장실을 엿보는 것보다 무례한 일이라고."




이 책을 읽고 쓴 아이의 감상문은 이러하다.






D의 글








박사는 수식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했다. 나에게 박사의 수식 같은 존재는 무엇일까? 그것은 새이다. 새 이야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다. 공원에 나가도 새가 없나 두리번 거리고 친구들과 놀다가도 여기저기 둘러본다. 발견하면 시간이 되는대로 새들이 도망가지 않는대로 멈춰서서 보고 또 본다. 황금새 같은 새들이 뜻밖에 나타나주면 좋지만 참새라도 실망하지 않는다. 아마 내가 열심히 참새 떼를 보고 있는데 친구가 나에게 달려와서 새들이 도망간다면 나는 마땅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네. 나는 지금 새를 관찰하고 있다고. 탐조(새를 관찰하는 것)를 방해하다니. 그건 단잠에서 깨우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야. 새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데 우다다다 뛰어 오다니. 노크 없이 내 방문을 여는 것보다 더 무례하잖나."




D의 글 -부분










눈물이 날 만큼 근사한 한 컷이었다. 


그 풍경에는 D가 새를 기쁘게 쳐다보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어서




그는 종종 나를 놀라게 하는 글을 쓴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다룬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행복'을 이해하지만 (어린아이와 동물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 친구,이웃, 그리고 지금 흔들리는 저 나뭇가지의 잎사귀마저 행복해야 한다고 적었다. 우리는 어떤 존재일지라도 행복해야 한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아이는 공원에서 새를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 바람이 불고 잎이 흔들린다. 나뭇가지 사이에 신의 시선이 머물지도 모른다. 나는 태어났을 수도, 사라졌을 수도 있다.




누군가 행복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런 풍경을 들이밀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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