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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Oct 30. 2022

직장동료의 결혼식

축시

어제는 직장동료의 결혼식이었다. 다들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참석하는 성대한 결혼식이라고 말했다. 축사와 축시, 축가까지 총 19팀이 준비했다고 들었다. 직장동료가 만든 PPT에는 각 사람들을 소개하는 해시태그가 적혀 있었다. 이쯤 되면 축제였다. 축시로 가져갈 만한 시, 라고 생각하고 시집을 둘러보자 딱히 눈에 띄는 게 없었다. 나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었고, 그 죽음을 벗어난 시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산책」이라면 괜찮겠다 싶었다. 



산책


찾고 있었지

겹겹이 쌓인 눈부신 꽃을

사라진 도시에서 안개 속에서 피고 지는

찾아다녔지

그가 본 것은

빛의 사원

주두에 기대앉아 쉬는

천사들


황금이 담긴 붉은

도자기

천국과 지옥의 문

순장된

예언자들

그가 찾는 건 이런 게 아니었어

그는 신비를 찾는 게 아니었다

그가 본 것은 소리 내며

따라오는

눈송이

숨죽이던 늙은 개

창에 꿰인 채

흔들리는 아이

벌레의 울음소리로

엮은

양탄자

심해까지 울리던

종소리


그러나 그가 정말 원하는 건

그저 꽃을 보고 너에게

돌아가는 일이었지


김소형, 「산책」전문,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아침달



일터 사람들 앞에서 시를 낭독한 건 처음이었다. 두 분의 모든 순간이 산책 같기를, 그럼에도 결국 서로의 얼굴을 떠올리는, 축복에 가까운 삶이 되길 바란다, 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테라스를 꾸민 늘어진 천에 빗물이 모였다가 한 번에 쏟아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음식을 담고, 축가를 듣고, 박수를 치고, 가끔은 울컥대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스르륵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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