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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Oct 30. 2022

시가 자신을 밀어낼 때

대학수업 X 시창작수업

이메일이 왔다. 저번 "운문작법"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자주 앉던 자리 소개. 왜 이메일을 쓰게 됐는지를 상세히 적었다. "항상 시를 쓰면서, 시를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쓰고 싶은 이유보다 쓰고 싶지 않은 이유가 많은 사람이었다고." 이상하게도 시가 자신을 밀어내는 것 같았다는 말에 나는 오래 서성였다. 


오후에는 말과활아카데미에서 "여름밤, 사랑과 죽음의 시" 수업을 들었던 학생을 만났다. 그는 자신과 같은 학생이 많지 않냐고,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이 만남이 도움이 되었을까? 교양수업 때도 늘 남아서 질문하는 학생이 있다. 그의 노트에는 오늘 수업의 내용, 타 학생들의 글을 정리한 메모와 단상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 노트를 물끄러미 보면서 답해줄 수 있는 건 답해주고, 단언하기 어려운 건 잠시 접어둔 채 대답한다. 학생은 계속 시계를 보면서 저 때문에, 늦게 가시면 안 되는데, 를 반복한다. 그 학생의 질문이 끝나면 질문하려고 기다리던 학생을 문밖에서 만나고.


나의 입이 지은 죄들을 속죄할 시간이 없다. 퍼붓는 말 사이를 발은 익숙하게 빠져 나간다. 침묵하려던 순간에 간절한 이들이 다가온다. 지금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게 뭐 어렵다고,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은둔자에 가까운 사람이 이렇게 선생의 얼굴을 하게 되나 싶고. 결국 이렇게 선생은 만들어지나 싶고. 


그들 사이에서 여러 질문을 떠올린다.


시란 무엇인가요.


다시 묻자.


좋은 시란 무엇인가요.


다시 묻자.


어떤 것은 시가 되고 어떤 것은 시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수업했다. 릴케의 답변으로 저 빈칸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잠시 유유히 빠져나올 수도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셈이다. 책을 읽고 수업을 한다는 건, 더 많은 이야기를 대신할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거겠지.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에게 해줄 말이 담긴 책을 적절히 꺼내면 된다. 


며칠 전에는 길을 가다가 


"저, 시간 있으신지요. 보니까 가르치는 일을 하는 분 같네요."


라는 말에 흠칫 놀랐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갔다. 그런 놀라움 속에서 나는 여전히 새롭게 만들어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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