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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Sep 30. 2019

만년필, 손가락 사이의 인문

만년필을 쥐고 있으면 연애편지가 쓰고 싶다. 당신 곁의 공기는 달콤하고 평온합니다. 그 근처에서 머물고 싶습니다. 경백.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만년필을 손에 쥐어야 비로소 상상력이 작동되기 시작하고, 생각이 '삘'을 받는다. 특정 사물에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는 이상심리를 페티시즘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내게 만년필의 경우가 그렇다.

몇 년 전 필기감이 예전 같지 않아 갖고 있던 몽블랑 만년필을 A/S를 맡겼는데, 수리기간 내내 손에 깁스를 한 것 같은 신체적 이물감에 시달렸다. 몸이 불편하면 마음은 더 괴로운 법.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심한 상실감으로 한동안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만년필은 그리 실용적인 필기도구가 아니다. 우선 가격이 만만치 않다. 종이가 얇을 경우 잉크가 쉽게 번질뿐더러, 잉크를 주입할 땐 그것이 손에 묻기 십상이다.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줘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이 불편한 골동의 유물이 아직까지 사람들의 책상 서랍 안에, 양복 주머니 속에 버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만년필에게는 인문주의적 품격이 느껴진다. 만년필 역시 다른 ‘명품’들처럼 ‘실용’보다 ‘패션’에 기여하지만, 문자 친화적인 사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구별된다. 과장해서 말하면 추사가 말한 ‘문자향’과 어딘가 유사한 의고적 묵향이 느껴지는 것이다.

좋은 만년필은 그 이름처럼, 오래 쓸수록 사용감이 더 좋아진다. 손에 길들여진 만년필은 평생 사용된 후 결국 자신의 유품이 된다. 실제로 아버지의 유품이라며 늘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 몇을 본 적이 있다. 아들은 그것을 통해 사자와 함께 했던 시간의 체온을 느낀다.

사용자의 아우라가 만년필에 이입되는 경우도 자주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연필을 떠올리면 그것을 열심히 깎고, 세심하게 심을 다듬는 김훈이 연상되는 것과 같다. 작가 최인호는 평생 만년필로 글을 썼다. 턱을 괘고 원고지를 응시하는 그의 사진 한 구석에 만년필이 놓여 있다. 원고지 칸을 종종 이탈하는 특유의 ‘날림’ 필체에는 낭만주의자 최인호의 지성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작가 박완서 또한 만년필 애호가였다. 선물로 받은 만년필 하나를 달랑 손에 쥐고 숱한 장편과 산문을 세상에 내놓았다. 가난하지만 젊었던 시절, 어린아이들을 재운 후 앉은뱅이책상 앞에 정갈하게 앉아 원고지를 하나하나 메꾸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파커 만년필은 마음을 다소 아리게 한다.

내게 책 읽기는 만년필을 손에 쥐면서 시작된다. 좋은 문장은 만년필로 밑줄을 그을 때부터 다르다. 단어의 형태와 질감이 손끝으로 먼저 감각되고, 잉크의 연한 묵향이 코끝에 잠시 머물다가, 제일 나중에야 언어의 맥락과 의미가 수용되는 것이다.

누구는 만년필 잉크의 늪에 푸른 악어가 산다고 한다. 혹자는 잉크를 메피스토펠레스의 분신이라고 한다. 의미를 정확히 헤아릴 수 없지만, 만년필의 육체와 영혼에 대한 강렬하고 매혹적인 헌사임에 분명하다.

뜬금없이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A4용지 한 장을 꺼내 그것을 천천히 만년필로 옮겨 쓰기 시작한다. *'삶의 모순을 사랑하라'. 잉크병 속의 그대 영혼이 칠흑같이 검어질 때까지.

*이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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