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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Oct 23. 202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말과 몸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예감 같은 사랑에 빠진다. 무슨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막막하다. 어떤 느낌이 가장 충만할 때, 언어는 역설적으로 입을 다문다. 혀가 바짝 마르고 손에 땀이 난다. 그래도 당신에게 다가갈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말. 맥락 없이 더듬거리더라도 용기를 내어 무언가를 발음한다. 당신에게 그것이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차후의 일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당신은 뜬금없는 이 질문에 다소 난감해하다 잠시 침묵한다. 힐끗 나의 표정을 살피더니 이 말의 속뜻을 눈치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 나는 완벽한 타인인 당신을 노크하고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짧은 문장은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 당신은 어떤 장르의 음악 인가요? 혹은 당신은 누구신가요? 


두 사람의 언어가 공명할지, 어긋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십중팔구 말은 대부분 실패한다. 말의 존재양식은 머뭇거림이어서 우리는 모두 눌언으로 산다. 말이라는 기호의 무기력과 허약함은 그것의 숙명이다. 그래도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마음의 한 조각이라도 전하기 위해 우리는 온갖 표정을 짓고, 어깨를 움찔거리거나 손동작을 한다. 어떨 때는 짧은 침묵으로 말과 말 사이, 미처 전달하지 못한 의미의 틈새를 메우려 한다. 


‘말은 물질이다. 말은 살을 섞는 것보다 관능적이다’. 정희진의 이 언명은 말은 곧 몸이라는 것, 몸은 곧 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눈빛으로 더 많은 말을 한다. 눈은 발음하지 않은 채 사랑을 고백하고, 신념을 드러내며, 절망으로 탄식한다. 우리는 애인의 문자 메시지를 읽지 않고 때때로 손으로 쓰다듬는다. 애인의 손글씨에 지문이라도 묻어있는 양 그것을 조심스레 어루만진다. 


말은 곧 육체이므로 당신의 체취도 언어다. 당신이 입은 폴라티나 청바지도, 슬리퍼를 신은 맨발도, 페디큐어의 색깔도, 혓바닥을 관통한 피어싱도, 당신이 들고 다니는 에코백도 휴대전화 속 플레이 리스트도 결국 말이다. 세상 모든 것은 말이다. 섹스는 가장 친밀하고 아름다운 언어행위다. 모든 죽음도, 사자의 이름도 결국 언어다. 


어떤 단어는 그 자체로 언어다. 윤동주의 시 속에 등장하는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이런 작고 연약한 동물들조차 술어가 필요 없는 언어다. 허수경의 ‘당신’도, 기형도의 ‘청춘’과 ‘질투’도, 마오나 루카치의 ‘별’도 모두 한 단어의 언어, 단속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말은 또한 행위한다. 말은 위무하고 애무하고, 쓰다듬고 속삭인다. 어떤 말은 충돌하고 부딪치며, 할퀴고 깨문다. 어떤 말은 문처럼 열리지만, 어떤 말들은 벽처럼 앞을 가로막는다. 아주 가끔 어떤 말이 몸속으로 스며들 때가 있다. 육체에 스며든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 말은 평생 나와 함께 산다. 살아 낸다. 


버드 파월 (Bud Powel)의 말은 침묵이었다. 재즈 아티스트였던 그는 지병으로 말년에는 연주할 때 자주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했다. 건반 위에서 그는 돌연 연주를 중단하고 말없이 관객을 바라보았다. 그의 갑작스런 침묵은 웅변적이었다. 일부 관객은 흐느껴 울었고 일부는 환호했다. 


아득할손! 당신에게 다가가는 길이 멀다. 어떤 찬문으로 그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막막하다. 혀는 굳어 있고 이마엔 식은땀만 흐른다. 불언지언 不言之言. 말하지 않는 말도 있다는데, 그것은 마음을 얻은 이후에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언어다. 지금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말, 말뿐이다. 말이 원래 그러하듯 나 또한 눌변이므로 그냥 그렇게 어눌하게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 


혹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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