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다. 그는 황인숙과 더불어 제일 유명한 캣맘 시인이다. 십수 년을 하루같이 물통과 사료 봉지를 들고 해 저문 동네 구석구석을 걸어 다녔다. 누가 그의 어깨에 지운 짐도, 억지로 떠넘긴 책임도 아니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은 참으로 쓸모없고 번거로운 일이다. 어디 길고양이를 건사하는 일만 그런가? 시를 쓰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요즘 세상에 누가 팔리지도 않을 시를 쓰는가. 필경 부자이거나 할 일없는 사람이리. 그녀가 중국 시인 안치와 오줌발 대결을 할 때, 자존심이 아니라 애국심으로 버텼다는 시를 읽는 순간, 허허로운 웃음까지 났다.
세상의 가치를 효용성의 잣대로 본다면 ‘오줌발 배틀’도, 이것을 시로 옮기는 행위도 참 쓸모없는 짓이다. 그러나 김현의 표현처럼 '시는, 문학은, 예술은 쓸모를 거부하는 데서 얻는 자유와 해방’에 기여한다. 자유와 해방까지는 아니어도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쓸모 있음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시가 되어 우리 앞에 쓸쓸하게 나타난다.
세상의 모든 쓸모없음이 결국 쓸모 있음으로 기능한다고 말한 사람은 기원전 사람 장자였다. 그는 가죽나무에 빗대어 쓸모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냐고 묻는다. 그에게 모든 쓸모없는 것은 쓸모 있는 것이며, 모든 쓸모 있음은 역으로 쓸모없는 것이다. 바라보는 자의 시선에 따라 세상은 그 자체로 화엄의 공간이다. 사람만이 더 채우려 욕망하고, 만사에 의미를 부여하려 용을 쓴다.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중/ 김민정
시인은 시집 자서에서 ‘너는 이제와 소용없는 일을 오늘의 근심처럼 말한다. 쓸데없다’고 썼다. 쓸모없고 쓸데없으나 아름다운 것들을 기록하는 것, 상처를 무늬로 바꾸는 것이 그녀 같은 시인의 몫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쓸모없기가 어디 쉬운가. 게다가 아름답기는 더더욱 어려우니, 쓸모없고 아름답기를 소망하는 것은 오히려 시를 쓰는 자의 불가능한 꿈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