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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Oct 23. 2021

배꼽의 용도

추석 차례상을 물릴 때 흰 간장 종지가 눈에 띈다. 상의 정 중앙, 기름진 음식들 사이에 있는 듯 없는 듯 놓여있다. 영락없이 작고 초라한 배꼽의 모습이다. 배꼽은 진작에 은퇴한 신체기관이다. 폐는 숨을 쉬게 하고 심장은 구석구석 피를 흐르게 하지만, 배꼽이 하는 일은 딱히 없다. 그럼에도 배꼽이 없는 몸은 간장 종지 없는 제사상처럼 불완전할 것이다. 


소싯적에 자신이 외계인을 품은 적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던 친구가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한 남녀 E.T.가 자신의 뱃속에서 사랑을 했고, 사랑이 끝나자 비행접시를 타고 지구를 떠났는데, 그들이 탈출한 흔적이 바로 배꼽이라고.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다더니 결국 남은 건, 때 낀 배꼽이구나. 또 다른 친구의 응수다. 아무 말이나 마구 던지던 젊은 시절의 객담이다.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나 배꼽이 없어 불편한 점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것이 없으면 무엇을 잡고 웃어야 할지,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할 때 두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막막하리. 단전의 위치도, 상체와 하체의 기준도 모호해질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 ‘배꼽 아래 세 치에는 인격이 없다’. ‘배꼽에 노송나무 나거든’. 이런 멋진 속담을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내친 김에 검색을 해보니, ‘배꼽’은 한자 ‘배 복’(腹)에서 유래했고, ‘복’은 원래 핵 核을 의미한다는 것. 출생부터 배꼽은 그리 만만한 신분이 아니었다. 그리스어로 배꼽을 지칭하는 단어 ‘옴파로스’와 그와 관련된 신화 역시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긍심의 표현이 아니던가. 


배꼽은 유일한 ‘흔적기관’이다. 흔적은 지울수록 더 뚜렷해지는 법. 부재를 통해서 존재를 드러내듯, 배꼽은 희미한 흔적의 무늬로 생의 기원을 더 돌올하게 드러낸다. 배꼽은 생의 문장紋章이다. 

아마도 배꼽은 우리 몸에 새겨진 최초의 상처일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사람들 모두가 같은 상처를 지니고 지상으로 추방된 존재들이라고. 하여 사람은 모두 배꼽친구, 배꼽 사이에는 어떤 위계도 없다. 


반신욕을 하다 자주 배꼽을 들여다 본다. 

배꼽은 과꽃을 닮았다. 그것에서 까닭 모를 해쓱한 그리움이 묻어 난다. 가을 볕이 따뜻하고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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