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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Nov 09. 2019

검투사를 위하여

UFC (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종합격투기)는 현존하는 가장 인기 있는 격투기다. 흡사 사제 감옥을 연상시키는 철제 옥타곤 케이지 안에는 단 두 명의 파이터만 들어간다. 파이터가 들어서면 케이지의 문이 굳게 닫힌다. 룰은 단순하다. 힘으로, 근육으로, 싸움의 기술로 상대방을 제압해서 쓰러뜨리는 것이다. 피와 살점이 튄다. 턱이 날아가고 팔이 꺾인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 어린 비명과 신음은 관중의 환호와 야유에 자주 묻힌다.

이곳은 현대판 콜로세움. 케이지 안에는 투구조차 쓰지 않은 두 명의 검투사들이 창과 칼도 없이 맨주먹으로 적을 대면한다.

UFC는 언뜻 스포츠라기보다는 결투에 가깝다. 대부분의 경우, 한 명이 고통 속에 기권을 하거나 의식을 잃거나, 심한 부상으로  더 이상 두 발로 설 수 없을 때 경기가 끝난다. 그러니까 쓰러지거나 혹은 쓰러뜨리거나 둘 중의 하나다.

영국 출신 알리스타 오브레임은 천재적인 파이터이다. 특이하게도 그의 특기는 클린치. 그는 상대방의 옆구리를 노린다. 2라운드까지 안토니오 실바는 제대로 보여준 게 없다. 오브레임은 실바 보고 들어오라고 손짓하며 도발한다. 잠시 실바가 멈칫한 사이, 오브레임의 펀치와 킥이 실바의 턱에 연타로 꽂힌다. 오브레임에게 겨드랑이를 허용하면 밀리게 되어있다. 공이 실바를 살렸다.

3라운드 시작과 함께 오브레임의 손과 발이 동시에 실바의 안면부위를 향한다. 순간 반대편에서 엇갈리며 날아오는 실바의  예기치 않은 카운터 블로. 그 한방으로  끝내 오브레임은 일어나지 못했고 2라운드 10분 동안 일방적으로 그에게 유리했던 경기는 한순간에 끝났다. 실바는 전투에서 승리한 후 평소처럼 말을 아낀 채 케이지를 서둘러 떠났다.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승자 안토니오 실바를 옥타곤 매트 위에 눕힌 건 미국 히스패닉의 영웅 케인 벨라스케즈였다. 그는 라이트급 같은 유연한 순발력과 지구력으로 경기를 압도하다가 니킥 한방으로 실바를 침몰시켰다.

소감을 묻는 아나운서에게 그는 '탱고를 잘 추려면 상대를 잘 만나야 된다. 다음에 나랑 같이 탱고를 출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반문했다.



UFC는 복싱과 비교될 수 있는 성격의 게임이 아니다. 복싱은 상대가 넘어지면 일단 경기가 중단되지만, UFC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쉼 없이 상대방을 두들겨 팬다. 전자는 글로브라는 충격 흡수장치가 있지만 후자는 그것조차 없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단 하나. 적을 향한 무차별적인 공격뿐이다. 최장 5라운드에서 끝나는 타이틀 경기는 복싱처럼 상대방을 탐색할 시간과 여유조차 없다.

UFC는 서서 싸우고 누워서 싸우고 엎드려서도 싸운다. 발, 무릎, 팔 뒤꿈치에 의한 가격까지 거의 무제한의 '폭력의 기술'이 '합법적'으로 허용된다.

그라시아 애벗은 전설적 복서인 마이크 타이슨을 지칭하며 '그는 위대한, 아니 가장 위대한 선수' 지만, '단지 선수일 뿐 파이터는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파이터들에게 복싱은 이미 아버지의 게임이다.

사실 'UFC는 90% 이상이 멘탈 게임'이라는 말에 거의 모두가 동의한다. 근본적으로 싸움은 치킨 게임이므로 그들은 내면의 두려움을 여간해서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설령 케이지 매트 위에 드러눕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들은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가오'를 잡으며 준비된 멘트를 날린다. '나는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싸우기 위해서 링 위에 오른다'

그래서 악동 그라시아 애벗이 '나는 사람들을 두들겨 팰 때 기분이 좋다. 싸움은 늘 나를 편안하게 한다'라고 허풍을 떨 때, 그의 불안과 두려움의 옆모습을 슬쩍 엿볼 수 있는 것이다.

UFC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왼쪽 상단에 '이보다 더 진짜일 수 없다'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고릿적에 일본 격투기의 전설 안토니오 이노키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그는 우리의 영웅 박치기왕 김일을 흠씬 두들겨 팬 후,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레슬링은 쇼가 아니다'. 하지만 그 시대 대부분, 현재의 미국 WWE까지 프로 레슬링은 사전에 합을 맞춘, 각본에 의해 충분히 리허설을 거친, 어설픈 연기에 불과하다.

UFC를 그답게 만드는 것은 백퍼 리얼한 그 현장성에 있다. 그 가없는 폭력과 야만성과 광기. 그것은 여과 없이 날 것 그대로 케이지 위에서 펼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제도화된 폭력과 은폐된 음모, 위선적인 인간의 얼굴과 선택적 정의, 전관예우, 유예된 희망 따위는 없다. 하여 이것은 때론 가장 공정한 종합격투기 (UFC, Ultimately Fair Championship)로 불린다.

공이 울린다. 두 명의 검투사가 경기장에 들어선다.
둘 중, 단 한 명만이 이 옥타곤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 그들의 등 뒤로 둔탁한 파열음을 내며 철문이 굳게 닫힌다. 누가 이 하데스의 문 밖으로 다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관중석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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