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6. 18
이번엔 내가 하루 늦게 교환일기를 올리게 됐네. 어제는 분명 오디오 편집 아르바이트밖에 할 게 없으니까 포스팅까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편집본이 몽땅 날아가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느라 진땀을 뺐어. 그래서 마침내 쉬는 시간이 생겼을 때는 이미 그 상실감과 피곤함으로 노트북은 쳐다도 보기 싫은 상태였지. 게다가 전날 '여담(女談)' 프로젝트 회의 때 마신 커피 때문에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상태였거든. 그래, 이런 것들이 핑계라면 핑계지!
아무튼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난 오늘은 매우 여유로워. 최근에 약속이 몰려서 생기는 바람에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 일이 많았는데 말이야, 그게 얼마나 행복하던지. 삐약이(가명)와의 술자리, 초등학교 동창회, 우리가 함께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 회의. 모두 다 다른 성격의 만남이었지만 반가운 얼굴들, 내가 사랑하는 얼굴들을 마주하며 웃는 게 정말 좋았어. 휴학한지도 벌써 몇 달이나 지나서 내 사회적 에너지가 남아 돌기 때문도 있겠지만 집에 혼자 앉아서 '오늘은 또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고민하지 않는 시간이 나에겐 정말 소중했지. 이렇다 할 정해진 루틴도 없이, 집에서 나는 온갖 소음들을 묵묵히 듣고만 있는 생활은 너무 힘들어. 그래서 에어팟을 끼고 노래를 들어봐도,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재미있는 영상들을 찾아봐도 그 정적은 채워지지가 않아. 그런데 사람들과 만나면 거짓말처럼 그 고요함이 사라져.
사람들에 치이고 치여서 번아웃돼 버리는 건 나도 싫지만, 역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버티는' 게 힘들어. 타인은 언제나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만들어내고,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감내해야 하지. 하지만 그게 또 재미라면 재미 아니겠어? 예전에는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감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아. 이 보이지 않는 선을 내가 넘어가도 될까,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일까 하는, 그런 걱정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있는 시간이 전혀 즐겁지 않았어. 이제는 타인과 나의 공통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고, 누군가는 가식이라 부를지 모를 조심스러운 첫 만남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져.
만약 복학을 하고 너무너무 바빠진 다음에 이 글을 보면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생각하게 될까? 그렇지만 확실한 건 나는 혼자서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느끼는 정적을 참을 수 없다는 거야. 귀에서는 삐- 소리가 나고, 지구에서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
나는 고요함과 평화로움도 좋고 왁자지껄함도 좋은데, 다만 그런 분위기를 아무도 없이 나 혼자 느껴야만 하는 건 싫어. 이런 이야기를 쓰다 보니 어서 너의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우리 같이 여름 바다에서 뜨거운 햇빛도 쬐고, 함께 하게 될 프로젝트도 멋지게 해냈으면 좋겠다. 네가 말했던 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같이 드라마나 보며 수다를 떨 시간도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시간이 '필요' 하다니. 예전에는 그런 시간을 굳이 만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겼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계획해야 하는 나이가 됐구나.
오늘은 정적 속에서 고통받지 않으려고 노력해 봐야지. 나중에 이 교환일기를 보면서 '고통' 대신 '평화로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