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6. 02
드디어 노잼 머리를 탈출해서 약 제대로 된 염색을 했어. 그런데 염색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 결과는 만족스럽지만 돈을 낼 때는 쩔쩔매면서 할부를 해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지 뭐야. 솜브레인지 옴브레인지, 이름은 참 거창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둘 다 똑같은 얼룩덜룩 염색이야. 어쨌든 당분간은 이 얼룩덜룩 머리로 재밌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안 그래도 어깨까지 오는 기장으로 머리를 기르려면 앞으로 한두 달은 더 걸릴 것 같아서 생각만 해도 지루해서 하품이 났거든.
요즘 너는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물론 아르바이트와 다이어트를 병행하면서, 남는 시간엔 지인들과 약속을 잡아 맛있는 것도 먹고 하겠지만 뭔가 요즘 너를 생각하면 뿌옇게 보여. 컬러링을 '난춘'으로 바꿨다고 했지. 그런데 정작 내가 너의 컬러링을 들어본 건 딱 한 번 뿐이네. 내가 요즘 무엇이든 불안해하는 병에 걸려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너와의 관계에도 불안함이 느껴져. 이런 말을 하면 네가 '녹마답지 못하다'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스스로의 불안을 억누르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사이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허덕일 때는 정작 '이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사람들이 아니야'하는 지루함을 느끼고, 스스로 멀어진 후에 느끼는 이 외로움은 뭔지 모르겠다.
지금 집 근처의 카페에서 밀크티를 마시고 있어. 필사적으로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지. 항상 카페에서 밀크티를 마실 때마다 실망하곤 하는데, 그건 아마 우리 학교 카페에서 파는 그 싸구려 밀크티 맛이 안 나서일 거야. 연강이 있는 날이면 쉬는 시간에 떨어진 당을 채우기 위해서 허겁지겁 카페로 달려가서 그 밀크티를 사 마시곤 했었는데. 가격이 저렴한 건 말할 것도 없고, 홍차 맛이 거의 나지 않는 그 달달한 밀크티를 순식간에 흡입하면 남은 강의시간을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어. 우리 가끔 그 밀크티 얘길 했잖아. 어딜 가든 그 맛이 안나지 않느냐고. 며칠 전에 사마신 어떤 밀크티는 설탕을 때려 부어서 만든 건지 너무 달아서 한입에 바로 당뇨행일 것 같더라. 안 그래도 건강 걱정이 심히 들어서 아이스크림도 자제하고 있는 와중에 그런 단 걸 먹을 수가 없었어. 이제 우울증의 끝판왕까지 왔는지 아무 욕구도 생기지 않아서 곤란해하고 있는데 학교 카페에서 팔던 그 밀크티는 마시고 싶네. 그냥 밀크티를 한 손에 들고 과제 걱정을 하면서 네가 미리 도착해서 정갈하게 필기도구를 꺼내놓고 있을 강의실에 가고 싶다. 우리가 나란히 앉아서 수업을 듣다가, 네가 교수님의 이야기에서 뭔가를 캐치해서 너의 공책 귀퉁이에 뭐라 끄적이고 내게 보여주면, 나는 그냥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짓겠지. 그게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도 않았던 그때가 좀 그립네. 수업이 끝나면 우린 언제나처럼 과방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바로 정문으로 빠져나갈 거야.
아무래도 그때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서글퍼지기도 해. 나도 너도 복학하면 이제 졸업반일 테고, 너에겐 그때와 달리 동거인이 있기도 하고. 우리의 완전히 고립된 것 같던 아싸 인생도 이제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복학하면 하기로 했던 거, 잊지 말고 꼭 하자. 같이 공부하고, 각자 가깝기도 멀기도 한 미래에 뭘 원하는지 거리낌 없이 말해주자. 어쨌든 우린 뭐가 되든 서로를 응원해 줄 걸 알잖아. 아참, 복학하기 전에 꼭 여름휴가도 다녀오고. 복학하면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팟캐스트가 일주년을 맞이 하겠네. 알지? 9월 9일이 1주년인 거. 당장 오늘 녹음하면서 뭘 얘기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는데 말이야.
요즘 포털사이트에 '미국 폭동'이라는 검색어가 심심찮게 보이는데, 관련 뉴스 기사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어쩐지 작년에 '커뮤니케이션과 사회문제'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자꾸 기억이 나.
왜 시위가 꼭 평화시위여야 하니? 미디어에서 자꾸 시위의 '방식'에만 초점을 맞춰서 보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어. 중요한 건 시위의 본질 아닐까?
'시위'가 아닌 '폭동'이라고 하는 건, 마치 그 시위대가 무질서하고 공통된 목표도 없는 폭력배들처럼 보이게 하지. 미디어에서 보도하는 건 불타고 있는 경찰서나, 서로에게 무기를 휘두르고 소리를 질러대는 경찰과 시위대 등 시위대가 분노해서 저지르는 폭력적인 행동이야. 하지만 실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시위대가 무고한 상인들의 가게를 약탈하고, 폭력을 휘두르진 않을 거야. 흑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서, 더 이상 차별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일 텐데 우리는 편안히 소파에 앉아 인터넷 기사를 보며 "왜 이렇게 폭력적으로 시위를 하지? '우리처럼' 평화시위를 하면 될 텐데."라고 생각하지. 그건 트럼프가 군대를 동원해서 폭동을 진압하겠다는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생각이야.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도 마찬가지지.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잖아.
우리는 평등을 위해서 시위를 하지. 정당한 권리를 얻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모여 목소리를 내지. 절대로 이미 그 상태로 평화로운 기득권들의 입맛에 맞추려고 시위를 하는 건 아니야. 한 영상을 봤어. 시위대에 있던 서른 살의 흑인 남성이 거기 있던 16살 흑인 남자아이에게 '위험하게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하라'라고 울며 소리를 지르더라.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는 시위는 이전에도 여러 번 있어 왔지. 그런데도 무고한 흑인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계속되고 있어. 코로나 19 때문에 시위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할 의료진도 부족하다고 하더라고.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기 직전 경찰(새끼)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간신히 외치던 "I can't breathe!"와 그가 사망한 이후 "I can't breathe!"라고 다 함께 소리 질러 외치는 시위대의 모습이 함께 떠올라.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써야겠다. 시위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진행될지는 계속 지켜보면서 응원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