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차 Oct 23. 2022

누가 이 아이들을 길렀는가?

"아기 낳을 때 많이 아파요? 엄마가 겪은 통증 중에서 제일 많이 아팠어요?" 점심을 먹으며 큰애가 물었다. 큰애는 요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시도 때도 없이 저런 걸 물어본다.


나도 어릴 때 큰애와 비슷한 의문을 품었다. 아기 낳을 때 도대체 배가 얼마나 아픈 걸까? 두려운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경험해 보니 출산은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 떡 먹듯 쉬웠단 소리는 아니다. 겪어 본 통증 중 가장 아팠고 기절까지 했으니까. 그렇지만 출산은 순간이다. 무통주사라는 찬스도 있다. 반면 부모 노릇은 출산에 비해 만렙이다. 진통제 따위도 없다. 죽기 전까지 끝나는 법도 없다.


아이들을 키우며 울고 웃는다. 좌절과 기쁨, 피로와 감동의 칵테일을 내리 마신다. 게다가 나는 오은영 박사님도 아니다. 자녀를 양육하며 삽질이란 삽질은 다 자행했다. 나 자신의 삶을 그럭저럭 꾸려가는 것도 40년 넘도록 좌충우돌 중인데 그 와중에 또 다른 인생들을 서포트해야 하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매일매일 아찔하다.


그러나 어른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은 제 밥그릇 가지고 태어난다고. '태어났으면 다 살게 되어 있다'는 말은 지금 같은 저성장 · 양극화 시대엔 조심스러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나는 저 말에 신앙의 관점으로 동의한다. '하나님이 아이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면 살아갈 힘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자녀를 주셨다면 키울 수 있게 도와주실 것이다'. 이 믿음은 변변찮은 부모인 나를 지금까지 제정신으로 버티게 했다.


믿는 구석이 있다 한들 삶이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막내가 여서 일곱 살 즈음이던 날로 기억한다. 분명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애쓰고 있는데도 아이는 계속 울고, 답답한 상황은 제자리이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런 날이었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 키우는 게 너무너무 힘든데요?' 하나님께 질문징징거림을 퍼부은 후 대답을 듣기 위해 성경을 펼쳤다. 그러자 다음의 구절들이 보였다.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을 지으신 분께서 이처럼 말씀하셨다. "장차 일어날 일을 내게 물어라. 내 자녀에 관해 묻고, 내가 지은 것에 관해 내게 부탁하여라." (쉬운성경/ 이사야 45:11)


내가 살아 있는 한, 네 자녀는 보석과 같을 것이다. 신부가 자기 보석을 자랑하듯 네가 네 자녀를 자랑할 것이다...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누가 이 아이들을 길렀는가?'라고 할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왕들이 네 자녀를 돌볼 것이다... 그때에 너는 내가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의지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쉬운성경/ 이사야 49: 18~23 중 발췌)


이 말씀은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을 예언한 본문이다. 하지만 육아에서 죽 쑤던 나에겐 이 말씀들이 하나님의 뜨거운 위로와 약속으로 와닿았다. 


'이 아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구나. 아이들을 계속 하나님께 부탁하면 되겠구나.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돌봐 주겠다고 약속하시는구나. 내 아이들을 보석과 같은 존재로 다듬고 계시구나. 때로 답답한 일을 만나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를 키우면 그분이 반드시 도와주시겠구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타이밍으로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들려주신 것에 소름이 돋았다. 성경을 읽은 후 벅찬 마음으로 감사 기도를 드렸다.


오늘 아침에도 성경을 읽다가 위의 말씀을 만났다. 예전 기억이 떠올라 반가웠다. 부모로서의 삶이 여전히 만만치 않은지라 새삼 힘이 나기도 했다. 수년 전에 나를 괴롭혔던 문제는 더 이상 골칫거리가 아니다. 대신 새로운 어려움들이 문득문득 찾아왔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다. 그러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지혜를 주시거나, 막막하더라도 버틸 힘을 주시거나,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을 주셨다. 그는 정말로 아이들을 길러 주셨고 나 역시 길러 주셨다. 변변찮은 우리를 보석으로 세련하고 계셨다. 


난 아직도 내 부끄러움과 싸운다. 부모로서 부끄러운 모습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아이들을 잘 돕고 있는지 확신이 안 설 때도 많다. 다행히도 믿는 구석이 있다. 나와 내 아이들의 참 부모가 되어주시는 흠 없으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오늘도 안심한다.


"... 누구든지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쉬운성경/ 베드로전서 2:6 하)

작가의 이전글 나의 사방을 두르는 군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