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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13. 2020

보드라운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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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자랑을 하라면 제비가 많다는 걸 꼽고 싶다. 어중간한 도시 모습을 한 우리 동네는 높은 건물 대신 낮은 주택이 많으면서도 근처에 강이 있다. 제비가 살만한 자연 서식지와 처마의 조건을 갖춘 장소이다. 여러 마리의 제비가 하늘에 선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쫙쫙 나는 걸 보면 정말 시원하다. 우체국 로고가 왜 제비인지 납득이 가는 장면이다. 좋은 소식을 물고 왔다는 흥부 이야기 탓도 있겠지만 날쌔게 나는 솜씨도 제비가 우체국 전속 모델이 된 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저 귀여운 몸집으로 먼 동남아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놀랍다. 수학자들인들 제비 날갯죽지 성능을 숫자로 환산할 수 있을까. 


장 보러 갈 때 가장 많이 만나는 새는 참새다. 포르르 날아 보도블록에 착륙해서 길가 잡초 사이를 콕콕 쪼는 참새를 보았다.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깜찍한 동작으로 요리조리 고개를 갸웃하며 재빨리 흙을 쪼는데도 머리에 쓴 갈색 모자가 솜씨 좋게 잘 붙어 있다. 참새의 업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살금살금 지나가 주었다.

그 외에 까치랑 직박구리도 매일 볼 수 있다. 박새는 가끔 보인다. 까마귀도 종종 보는데, 보이지 않더라도 소리는 자주 들린다. 오늘도 빨래 널다가 멀리 있는 까마귀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깍~깍~깍~"이 아니라 마치 "가~ 가~ 가~"처럼 들려서 우스웠다. 누굴 보고 자꾸 가라고 하는 거니.


『야생의 위로』에서 읽었는데, 우울증을 완화하려면 주변 경관에 새가 있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엑서터 대학교의 연구 결과가 있단다. 나처럼 새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연구다. 굳이 각 잡고 연구할 필요도 없는 너무 당연한 사실 아닌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에서 새를 예찬했다. "예전에도 내가 마을의 채소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때 참새 한 마리가 내 어깨에 잠시 내려앉은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그 어떤 훈장보다도 영광스럽게 느껴졌다... 반쯤 헐벗은 축축한 들판에 어렴풋이 들리는 유리울새 노래와 참새와 티티새의 은방울 같은 노랫소리는 겨울의 마지막 눈송이들이 떨어지면서 내는 짤랑거리는 소리 같기만 하다." 


나에게도 소로우와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사건이다. 10년도 훨씬 전에 내가 살던 아파트 입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아파트 입구 바닥에 동그란 연두색 공 같은 게 두 개 놓여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것이 공이 아닌 다른 무언가임을 깨달았다. 동박새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기가 막혔다. 심지어 코앞까지 다가온 나를 전혀 피하지 않았다.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야생의 새들. 뭐지 이 비현실적인 상황은. 둘 다 반은 잠든 것처럼 몽롱해 보였다. 양손에 동박새 한 마리씩 조심스럽게 쥐어 안았다. 동그랗고 하얀 아이라인 속의 보석 같은 까만 눈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줄이야. 순순히 잡힌 새들은 도망갈 생각을 않고 내 손안에서 힘없이 멍했다. 어처구니없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둘이서 날다가 충돌해서 떨어진 건가? 아니면 둘 다 실수로 쥐약 같은 걸 먹은 걸까? 오후 6시도 안된 이 시간에 벌써 졸린 건 아닐 텐데? 손을 살살 흔들면서 "얘들아 너희들 왜 이래? 왜 여기 있어?"라고 깨우듯 말을 걸었다. 그러자 한 마리가 갑자기 깜짝! 놀라면서 파드득! 날아 바로 옆의 나무에 앉았다. 그걸 보던 다른 새도 겨우 정신을 차린듯 내 손을 빠져나와 친구 곁으로 날아갔다. 다행히 나무에 앉은 동박새들은 여느 새들처럼 멀쩡해 보였다. 새들 대신 어벙해진 나는,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복기하느라 1분 정도 서있어야 했다. 이 사건의 증인이 온 우주에 세 생명뿐이라는 게 애석하다. 하필 핸드폰도 없어서 사진도 못 남겼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연두색 보드라운 온기가 내 손에 왔다 간 것은 나만 아는 영광스러운 훈장이다.


슬럼프로 우울할 때 유튜브에 'bird sound'를 검색했다. 그렇게라도 새를 보면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작은 새들이 등장하는 1시간짜리 영상을 찾았다. 별의별 예쁜 새들이 해바라기씨 같은 걸 먹으며 조잘 거리는 영상이었다. 그림을 그리던 도구였던 태블릿 모니터가 슬럼프 때문에 계속 꺼져 있었는데, 그걸 창문으로 만든 셈이다. 태블릿에 새들의 식사 영상을 띄워놓으니 마치 작은 창으로 새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그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일상을 살았다. 하늘을 쌩쌩 나는 제비만큼은 아니라도 태블릿의 원래 기능을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점점 몸이 움직여지고 마음이 밝아졌다.


한편, 내 이름은 성경에 안 나오지만 우리 동네에 사는 새는 성경에 나온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도 하나님께서 잊으신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네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많은 참새들보다 훨씬 더 귀하다... 까마귀를 생각하여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어들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먹이신다. 그런데 너희는 새들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누가복음 12:6~7, 12:24)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작은 새 한 마리도 잊지 않으시며 손수 먹여 키우신다고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더 나를 잊지 않으며 먹이고 계신다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주변에서 자주 참새와 까마귀를 볼 수 있게 하신 건 이 사랑을 잊지 않게 도와주시려는 일상의 은혜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 그 까마귀는 누군가의 마음에 있는 우울과 걱정을 향해 "가~가~가~"라고 얘기해 준 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을 치우고 새소리가 배달해 준 보드라운 온기를 마음에 채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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