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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13. 2020

총총 빛나는 오전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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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코로나19가 시작되었다. 겨울 방학부터 그다음 해의 반이 가까워지도록 온 가족이 집에서 복닥거리며 살게 될 줄 몰랐다. 팬데믹이 되자 남편이 재택근무를, 아이들은 미뤄진 개학을 온라인 수업으로 각각 시작했다. 작은 집에 24시간 내내 사람이 넷. 냉장고가 빠르게 털렸고 집은 빠르게 더러워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내 책상 앞에서의 고요한 시간이 줄어들었다. 잠자는 공간이면서 내 책상과 막내 책상이 함께 있고 아이들의 책장까지 놓인 안방은 여러 가지 역할을 요란스럽게 해내는 중이었다. 오직 화장실만이 고요한 곳이었다. 그렇지만 거기에선 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나 독서, 글쓰기를 할 순 없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됐다. 세상 모든 사람이 힘든 때였지만 나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마침내 등교가 시작되었다. 작은 애는 5월 말, 큰애는 6월 초. 그것도 일주일에 이틀, 오전 수업만 하고 돌아왔다. 비현실적이고 정신없는 생활 틈으로 일주일에 딱 3시간이 만들어졌다. 가족들 등교와 출근의 교집합인 화요일 오전 3시간. 그때만큼은 아무도 없는 집을 나 혼자 누리게 된 것이다. 나는 MBTI를 하면 극도로 치우친 I형으로 나온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만 에너지가 채워지는 유형이다. 그렇기에 그 3시간은 다이어트 후의 첫 떡볶이처럼 귀중한 것이었다.


찰나의 시공간 독점은 오래가지 않았다. 등교한 지 두 달 밖에 안됐는데 여름방학이 다가온 것이다. 아이들이 1학기 마지막 학교 수업을 들으러 간 7월의 어느 화요일. 나만의 오전 3시간을 손에 쥐고 고민에 빠졌다. 내일부터 다시 24시간 아이들과 붙어 지내야 한다. 아아... 이 3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지? 너무나 고요한 집안 속으로 먼 곳의 망치소리, 옆 중학교의 시원한 매미소리, 잉-- 잉--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가 태평스럽게 파고든다.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더니 세탁기가 빨래 다했다며 노래를 불렀다.  그런 노래나 듣고 앉아있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그래서 적재의 '별 보러 가자' 노래를 틀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구경하고 싶다고 한다면 밤에 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엄청 지루해서 잠이 잘 올 테니까. 내 생활은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학생과 닮아 있다.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또 한다. 생활 반경은 좁다. 집안일을 하고 장을 보고 아이들을 돌보고 짬을 내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린다. 외식도 여행도 쇼핑도 사람 만나는 일도 관심 없고 활동적인 취미도 없다. 


하지만 심심하게 사는 나에게도 딱 한 가지 버킷리스트가 있는데, 은하수를 맨눈으로 보는 것이다. 별자리 같은 건 모르지만 하늘에 뜬 별은 내 맘을 참 벅차게 만든다. 먼지만큼 좁은 공간에서 종종거리며 사는 나를, 별은 두려울 만큼 넓은 우주로 끌어당겨 준다. 내 공간 너머의 광대한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까만 바탕에 한두 개 콕콕 찍힌 점만 보아도 반가운데 은하수는 얼마나 황홀한 아름다움일까. 언젠가는 분주한 도시를 떠나 고요한 밤 하늘에 흐르는 강을 꼭 보러 가고 싶다.


내 버킷 리스트의 주제가 같은 느릿한 4분 30초짜리 노래를 듣는다. 이젠 세탁기도 조용하고, 망치소리도 사라졌다. 매미만이 코러스를 넣고 있다. 노래를 반복 재생해놓고 사부작사부작 집안일을 한다. 두 시간 앞으로 다가온 시끄럽고 바쁠 생활에 앞선 잠시의 충전이다. 언젠간 고요한 밤 하늘에 뜬 별을 보러 가야지. 그때까진 여기 내 작은 울타리를 잘 돌봐야지. 해가 뜬 오전에 별 노래를 흥얼거린다. "긴 하루 끝 고요해진 밤거리를 걷다 밤 하늘이 너무 좋더라...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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