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차 Dec 16. 2020

골절 1_스타트와 가속 사이의 불상사

Copyright 2020. 녹차 all rights reserved.





엄마와 나는 서로 다른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먼지가 부유하며 공기와 부딪히는 소리 말곤 들리는 게 없는 오후였다. 전화벨 소리가 터져 나오기 전 까진.


엄마는 가끔 낮잠을 잤다. 엄마는 안팎으로 시달리는 일이 많고, 스트레스가 극했고, 가위눌림을 달고 살았고, 몸이 약했다. 기절에 가까운 짧은 낮잠은 엄마가 챙긴 몫이라기보단 엄마를 덮치는 증상이었다. 낮의 렘수면을 방해하는  눈부신 해가 아닌 갑작스러운 전화 소리였다.  당시 우리  전화 소리는 인정사정없었다. 고요를 찢어발기는 가위였다. 전화벨은 날벼락처럼 엄마를 깨웠고 엄마는 깰 때마다 매번 새롭게 소스라. 마취에서 억지로 깨어난 상태와 비슷해진 엄마는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끝난 후엔 엄마의 짜증이 시작됐다. 주름이 펴지지 않는 미간, 삼백안, 신경질적으로  쓸어넘기는 파마머리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한숨을 내쉬고, 내쉬고, 내쉬었다. 낮잠을 방해한 전화에 못마땅해했다. 깨끗이 풀지 못한 피곤 때문에 부정적인 단어와 의성어가 섞인 신음을 게워냈다. 나나 오빠에게 무계획적인 잔소리를 꺼내기도 했다.


엄마의 낮잠, 초청장 없는 전화벨 소리, 엄마의 히스테리. 이 삼 단계 루틴은 나의 히스테리였다. 엄마가 낮잠 잘 때 나의 사명은 집안을 진공 상태로 만드는 일이었다. 이 임무 완수에 요구되는 미덕은 '민첩함'이다. 없는 사람처럼 사는 건 미취학일 때부터 도가 터서 고요히 내 할 일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전화벨이었다. 벨 소리가 들리는 즉시 전화기를 낚아채려면 100미터 달리기 선수의 다리가 필요했는데 근육량은 다를지 모르나 그만한 부피의 장딴지는 나도 있었다. '따르릉'의 쌍 디귿 소리를 듣자마자 전화기로 튀어나가는 내 순발력은 처음엔 미진했으나 날이 갈수록 약진했다.


그런데 그날은 엄마가 낮잠 잘 때 나도 잠들어버렸다. 곧, 따르릉. 쌍 디귿을 지나 이응이 끝나도록 눈을 다 뜨지 못했다. 소리의 출처가 꿈인지 현실인지 감이 안 잡혔다. 현실임을 알아차리는 데 2초가 걸렸다. 몸의 반응 속도는 그보다 몇 배는 둔했다. 잠의 관성에서 후딱 이탈되지가 않았다. 두 번째 벨이 울렸다.  이쪽 저쪽 흔들리던 동공이 소리 나는 쪽으로 고정됐다. '세 번 이상 울리게 해선 안 돼.' 몸의 온 근육에 신경을 집중했다. 묵음으로 우아아악 기합을 질렀다. 몸과 방바닥이 너비 10센티미터, 길이 3미터의 고무 밴드로 칭칭 결합된 것 같았다.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그동안 갈고닦은 동물적인 민첩함 다 어디 갔어? 대답 들을 새 없이 팔과 등과 다리의 이름 모를 근육들을 닦아세웠다. 세 번째 따르릉을 들으며 사지가 몸뚱이를 일으켰다. 방문을 향해 육중한 신체를 후닥닥 날렸다. '후닥닥'의 두 번째 '닥'이 '꽝!'으로 바뀌리라는 건 예상 못 했다. 높이 2.5센티미터의 아찔한 문턱에 걸려 바닥에 넘어졌다. 어찌저찌 허둥거려 다섯 번째 따르릉은 막았다. 엄마가 깼다. "뭔데?"라는 음량 큰 질문이 나를 세웠다. "잘 못 걸었대요." 조용히 전화기를 내려놨다. 엄마는 신경질적으로 뒤척이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나도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아드레날린이 가라앉고 가벼운 탈진의 기분이 스쳐 지나가고 몸의 감각이 살아났다. 오른쪽 발등에 서먹한 자극이 감각됐다. 발을 내려다봤다. 못 보던 극적인 봉우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내 생애 첫 골절이었다.


(다음 글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외모 걱정'이라는 과목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