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육하고 번성하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우리 교회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에 따라 성도들에게 자녀 가지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성도들 거의 모든 가정이 두 자녀, 혹은 세 자녀를 가지고 있지요. 아주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아이를 많이 가지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애국하는 겁니다.”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교회 목사님 말씀이다.

처음 이 교회에 온 날을 잊을 수 없다. 목사님은 야곱이란 인물에 대해 강해를 하고 있었다. “야곱도 사람이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면이 있는 사람이었죠.” 야곱. 쌍둥이 형의 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사람. 태중에 하나님에게로부터 이미 선택받은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와 같이 불완전한 인간이라니.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형, 에서에게 복을 빌어주겠노라 하신 말씀을 듣고는 자기가 에서인 양 분장하고 아버지에게 가 형이 받아야 할 축복을 대신 받아버리죠. 그리고는 에서에게 잡혀 죽을까 봐 외삼촌 라반에게로 도망갑니다. 거기서 운명처럼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나게 되고 라헬을 얻기 위해 칠년을 하루같이 일합니다. 칠년이 끝나자 외삼촌 라반은 자신의 두 딸, 라헬과 레아 중 누구와 결혼할 거냐고 야곱에게 묻습니다.”

“야곱이 진실로 믿음의 사람이었다면 그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러지 않았죠. 라반의 질문을 듣자마자 이내 거침없이 라헬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야곱 역시도 형, 에서를 속이고 자신의 정욕을 따라 인생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등 여러 면에서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난 목사님의 균형 있는 시각이 마음에 들었다. 한 인물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사를 보내는 것이 아닌, 잘못 행동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했다고 말씀해 주시는 부분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목사님이 자녀 가지기를 권면한다고 말씀하실 때 굉장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정말 아이 낳는 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걸까. 아이를 낳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걸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 말씀의 배경은 당시 하나님께서 부패한 사람들에게 실망하여 지으신 생물들을 다 쓸어버리기로 결심하셨던 때이다. 성경은 그 당시 오직 ‘노아’만이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였고 하나님과 동행한 자였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 너와 네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명하셨고 짐승, 새 등 암수 둘씩을 방주로 들여보내라 하신다. 그 후 하나님은 땅에 사십일 이상 비를 내려 방주를 제외한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신다.

비가 그친 후 노아 일행은 땅에 상륙하여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명령으로 교회에서는 이 말씀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교회에서 내가 속한 소모임만 하더라도 총 일곱 가정이 있는데 각 가정마다 모두 아이가 둘 이상은 된다. 그래서 소모임을 할 때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로 방 안은 엄청나게 시끄럽다. 테이블 맞은편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게 들리지 않을 정도이다. 거기서 아이 없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대학교 때 교환 학생으로 미국에 간 적이 있었다. 그 곳에 간 학생들은 나까지 세 명이었는데 그 두 명은 늘, 어떡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하는 신실한 기독교인들이었다.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중에 어쩌다가 결혼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난 아이 가질 생각이 없다.”고 말하자 그 두 명 중 한 명이 “넌 지금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든 성경 구절 역시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신 ‘생육하고 번성하라’였다.

당시 나는 그 말에 대해 딱히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냥 우물쭈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지금도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내가 생육하고 번성하는 데 아무 기여도 하지 않는 건 그야말로 사실이기 때문이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있는 건 ‘나에게 아기는 없다’는 굉장히 확실한 명제이다. 과거로도, 앞으로도.

나에게 아기는 없다. 도저히 아기 키우는 나를 상상할 수 없다. 내가 아기를 키우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난 그 선배 말대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불순종하는 나까지 끌어안아 주시길 기도할 뿐.

뒤이어 목사님이 말씀을 이어가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은 육체적으로는 아이를 낳아라, 라는 말도 되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우고 전도하면서 결국 하나님 나라를 번성시키라는 말씀이십니다. 이에 따라서 우리는 항상 때를 얻거나 못 얻거나 전도하고 서로를 권면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역시 목사님은 항상 균형 잡힌 말씀을 하신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로서는 목사님의 그 두 번째 말씀에 기댈 수밖에 없다. 내 몸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을 전도하고 주위에 하나님을 전하기.

대학 시절 우즈베키스탄으로 전도 여행을 갔던 경험이 있다. 그 곳 사람들은 매우 순박하고 친절해서 가는 곳마다 난이라고 하는 직접 만든 빵을 비롯한 맛있는 음식으로 우리를 대접해 주었다. 그 곳의 과일은 크기가 크고 즙이 달았던 기억이 난다. 우즈베키스탄은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칠, 팔십 년대의 느낌이 났다. 시가지 대부분의 건물은 돔 형식이라 매우 기품 있게 보였다.

대부분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무슬림이다. 하지만 몇몇 기독교 교회가 있었고 우리는 그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워십 댄스를 췄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전도하기보다는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 지역이 주님을 믿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 일명 ‘땅 밟기’ 기도였다. 직접 전도를 하다간 그 곳에서는 잡혀갈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우리가 아주 작은 마을을 방문했을 때이다. 숙소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찰차가 집 앞에 서는 거였다. 당시 우리에게는 통역을 해주는 고려인이 있었는데 그가 큰 일이 났다고 우리에게 한국어로 소릴 쳤다. “당장 경찰서로 가야 합니다.” “아니, 왜요?” “여러분이 여기 전도하러 왔다는 걸 경찰이 알게 됐어요. 강제 추방되거나 감금될 수도 있어요. 얼른 경찰서로 가야 해요. 성경은 가방에 잘 숨기고요.” 경찰차를 탄 적은 내 생애에 한 번도 없었다. 나와 다른 친구 두 명은 떨면서 경찰차에 올랐다.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말벌이 차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내 생애 그렇게 큰 벌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셋 중 한명을 물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말벌에 물리면 저렇게 되는구나. 꼭 선풍기 아줌마처럼 붓는 친구의 얼굴에 깜짝 놀랐다. 그때 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경찰이 차를 돌려 우리를 병원 앞에 내려준 거다. 고려인이 말했다. “일단 오늘은 치료를 받으랍니다. 그리고 오늘 안으로 이 마을을 떠나라고 합니다. 내일도 여기에 있다가는 경찰서로 소환된답니다.” 다행히 친구는 링겔을 맞은 후 급속히 부은 얼굴이 가라앉았고 우리는 급히 그 마을을 떠났다.

얼마 전에는 교회 사람들과 노상 전도를 했다. 봉지에 귤 세 개씩을 넣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예수님 믿으세요.” 하며 귤 봉지를 건네주었다. 대개는 “감사합니다.”하며 귤 봉지를 받아갔지만 어느 부부는 “됐어요.” 하면서 쌀쌀맞게 나를 지나쳤다. 그러자 내 마음은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내겐 귤 두 봉지만 남아 있었다. 머릿속에 경비실 아저씨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분들이라면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경비실로 가 “예수 믿으세요.” 말은 하지도 못하고 귤만 건네 드렸다. 그 분들은 “잘 먹겠습니다”하면서 받아주셨다. 목사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 믿으라고 전도한다는데 난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다.

목사님의 두 번째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미래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받는 것 같아 마음이 환해졌다. 앞으로는 전도에 더욱 힘써야지.

나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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