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흔들리는 마음

마흔, 흔들리는 마음


공자님께서는 마흔은 미혹됨이 없는 불혹의 나이라고 하셨다.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스물이 청춘이 피어나는 시기라면, 서른은 본격적으로 일에 착수하는 시기, 마흔이라면 하는 일에의 집중의 시기라 할 것이다.

딩크족인 나에게 마흔이란 ‘가임기의 막바지’이다.

삼십대까지는 ‘얼른 아기를 낳아라’ 하는 주위의 압박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흔이 가까워 오자 주위 사람들도 이제 그다지 임신을 기대하지 않는다. 남들이 내게 비로소 이래라 저래라를 하지 않게 되자 그제야 난 임신과 육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기엔 나의 청개구리 기질도 한 몫 하였다. 나는 늘 다수의 의견에 거슬러 올라가려는 습성이 있다. 특차로 고려대 농업대학교에 들어갈 성적이 되어 지원하려고 했다. 하지만 “농대가 뭐니? 여자가 농대 나와서 뭐하려고 그래?” 하는 아빠의 반대에 밀려버렸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나에게 아빠는 법과 같은 존재였다. 아빠는 알까. 그 날 밤 내가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그 일 이후로 한동안 아빠에게 마음을 닫아버렸다.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와서는 예술가로서의 밑바닥 삶을 경험한다면서 홍대 원룸 촌에서 지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선택들로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가끔 후회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한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난 길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육아와 출산이 권장되는 사회에서 한 걸음 비껴가고 싶은 마음.

하지만 나이 마흔을 맞으며 조금씩 흔들리는 마음이 느껴진다. 가임기의 막바지, 이제는 정말이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느낌이다.

정말 이 길이 최선일까.

부들부들한 살결과 천사 같은 미소의 아이를 난 영원히 내 품에 안을 수 없게 되는 걸까. 내 뱃속에 있던 아이를 내 손으로 받아들일 때의 벅찬 감동을 난 느낄 수 없는 걸까. 우리 독서 모임에는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가 있는데 그 아이의 손짓 하나, 발짓 하나를 보는 게 요즘은 참 경이롭게 느껴진다. 아이의 웃음은 보는 사람을 따라서 미소 짓게 만든다. 한 번 안아보고 싶은 욕망을 참느라 힘들다. 어쩌다 한 번 안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무릎에 올려놓으니 꼼지락꼼지락 하면서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테이블에 놓인 책을 잡는데 귀여워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

가임기의 막바지가 되어서야 난 진지하게 임신을 생각해 본다. 지금이라도 아이를 가진다면 내 나이 육십이 될 때 아이는 스무 살이 된다. 그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짓일까.

누군가는 부모가 마흔이 넘어서 낳은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더 영리하다고 한다. 과학적인 통계가 그렇다나 뭐라나. 이 삼 십대와 달리 사십대의 부모들은 다소 느긋하고 경제적 안정도 이룬 후라서 늦게 낳는 게 아이의 인격 형성에도 더 좋다고 한다. 또한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기형아 검사가 세밀하게 이루어져서 태아 감별에 대해서는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자꾸 장점에만 눈이 간다.

마흔이 되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그 말은 거짓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딩크로 살기로 학창 시절부터 굳게 결심해 온 나에게도 마흔이란 나이는 한참 흔들리는 나이이다. 이런 날이 올지는 몰랐다. 난 십대 때부터 나에게 아이는 없다고 굳게 믿고 자랐다. 이십대는 더욱 그 생각이 강해졌다. 한번은 사귀던 남자와 이에 대한 의견 충돌로 헤어지기까지 했다. 결혼을 한 삼십 대에는 사람들과 다른 선택을 한 나 자신을 지켜가며 그렇게 독하게 마음먹고 살았었다. 약 삼십 년을 아이 없이 살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보냈었단 말이다.

그런데 왜 최근에 갑자기 아이가 미치도록 예뻐 보이는 걸까. 그 천사의 미소, 매끄러운 살결, 손가락, 발가락.

아이 없이 사는 삶을 난 끝내 후회하지 않을까. 아니면 모든 걸 감수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육아 안에서 울고 웃는 길을 걷는 게 더 보람 있는 길일까.

싱숭생숭해지는 나이, 마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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