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

잘 자!


“자기야 드라마 한다!”

그의 방문에 대고 소리친다.

“입이 안 다물어지네, 아주.”

남편은 날 놀리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난 그 시선을 느끼지만 지금 남편 얼굴을 쳐다보고 나면 남편과 남자 주인공 외모의 심한 괴리감에 한껏 좋았던 기분이 가라앉을까 봐 화면만 쳐다본다. 살짝 미안한 기분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아줌마 다 됐네, 아 참 나 벌써 아줌마 맞지.

드라마가 끝이 났다.

“잘 자. 자기야”

난 산뜻하게 남편에게 말한다.

“응”

남편도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각방을 쓴다. 나도 남편의 팔베개 속에서 자던 때가 있었다. 신혼 초 약 삼 개월까지 그랬던 거 같다. 따로 자게 된 발단은 코골이였다. 남편은 코골이가 심한데 그때마다 내가 남편 등을 툭툭 치면 남편은 모로 누워 잤다. 그러면 코골이가 좀 약해졌다. 하지만 다음 날 남편은 “잔 것 같지가 않아. 자기가 하도 쳐대 가지고.” 하면서 불평을 토했다. 그야말로 ‘편히 자기 위해서’ 남편은 자기 방에서 자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자기 전 핸드폰 게임을 하는 남편에게 내가 제재를 가했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 전 이런저런 하루의 일과를 오순도순 이야기하면서 서로 손 붙잡고 자기를 원했는데, 웬걸, 남편은 하루의 끝을 내가 아닌 핸드폰과 함께하길 원했다.

“핸드폰 그만 하고 자자.”

수차례 말했다. 그 말에 깔려 있던 건 핸드폰 그만하고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는 거였다. “나 이거 게임 좀 끝나고.”

한 번 게임을 시작하면 적어도 삼십분은 소요되었고, 난 어느덧 기대를 접어버렸다. 남편의 팔베개를 하고 누워 서로의 하루를 아주 세세히 말하고서 오늘 하루 잘 살아냈다고 뽀뽀를 해주며 남편이 뒤에서 살포시 안아주는 기대를.

남편은 남편대로 구속받는다고 느꼈던 거 같다.

“내가 그나마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은 자기 전 뿐인데 핸드폰도 맘대로 못해?”

그러면서 자기 방에 나가 실컷 핸드폰을 하다가 잠이 드는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서운했지만 점차 남편에게 로맨틱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되면서 침대에서 대자로 뻗어 자는 데 익숙해졌다.

내 방에 들어서니 이제야 비로소 뭔가 홀가분해진 느낌이 든다. 이제는 완벽한 내 시간이다!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잠 잘 때 끌어안고 자는 곰 인형을 찾는다. 이 곰 인형은 남편 대용이다. 코도 골지 않고 언제나 얌전히 나를 살포시 안아주는 곰 인형.

책이나 볼까. 내 방에는 책이 많다. 천정까지 닿는 높이의 책장 두 개에 빼곡한 책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분야별로 가지런하게 꽂혀 있던 책들은 한 번 책장에서 벗어난 이 후 책상 위, 침대 위, 혹은 책장 속 가지런히 놓인 책 위에 눕혀진 채 마구잡이로 쌓여가고 있다.

그렇다. 난 정리에는 소질이 없다. 그래도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비록 손바닥만 한 작은 메모라 할지라도 방 안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저 난장판인 방으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이 방에서 난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머문다. 책상 위에는 팔뚝만한 크기의 ‘해피트리’가 있는데 ‘해피’라는 어감이 무섭게도 주인의 방치로 말라 가고 있다.

난 내 방에 머무는 걸 좋아한다. 작업할 때 방해받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인데 남편은 별로 개의치 않고 내 방에 쑥 들어오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가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볼에 살짝 뽀뽀를 해주고 컴퓨터 화면을 잠시 들여다본다.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남편의 방은 일단 세간이 별로 없기에 정리 면에서 한 수 두고 들어간다. 옷걸이에는 단출하게 작업복과 평상복이 걸려 있고 나머지 옷들은 옷장 안에 있다. 옷장 안에는 옷들이 종류별로 걸려 있고 속옷들은 각이 잡힌 채로 서랍 안에 누워 있다.

남편의 방에는 컴퓨터가 있고 그 옆에는 조그만 작업 책상이 있다. 이 작업 책상 위에서 남편은 프라모델 자동차 도색을 하곤 한다. 도색을 하는 작업 중간에는 방이 난장판이 된다. 조그만 방이 온통 페인트와 자동차 부품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 작업 도구들은 모두 제자리에서 가만히 주인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난 가끔 남편의 방을 열고 프라모델 자동차 만드는 데 열중해 있는 모습을 구경한다. 개미 눈알만한 스티커를 핀셋으로 집어 자동차에 붙이는 모습, 붓을 들고 손톱만한 부품들에 페인트를 칠하는 모습. 도저히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취미이지만 보다보면 아이처럼 귀엽기도 하고 저런 정교한 작업을 하는 남편이 존경스럽기도 한 알쏭달쏭한 기분에 빠져 잠시 남편의 등을 바라보다 문을 닫고 나온다.

남편은 지독한 키덜트이다. 빨간색과 검은색이 반반 섞인 컴퓨터 의자 뒤판에는 ‘어벤저스’라고 영어로 적혀 있다. 엄마 말대로 혹시 아이가 없어서 이런 걸 좋아하는 걸까. 아이가 있으면 같이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거나 그토록 좋아하는 어벤저스 영화를 같이 보기나 할 텐데.

“넌 아이 낳으면 양 서방이 잘 데리고 놀아줄 텐데. 한 명만 낳아라.”

엄마의 한 소리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칵” 남편이 화장실에서 내는 소리다. 그 후에는 ‘푸’하고 물을 뱉겠지. 이제 남편도 잘 준비를 하려나 보다. 오늘 남편은 자기 전에 무엇을 할까. 유투브로 자동차 관련 영상을 볼까, 아니면 야한 동영상을 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음악을 들을까. 무엇을 할지 알 수 없다.

남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이것뿐이다.

‘잘 자! 행복한 꿈 꿔!’

속으로 말한다. 이제 각자의 꿈나라에 들어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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