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중독은 답이 없다

쇼핑 중독은 답이 없다


“둘만 사니까 돈 많이 모았겠네.”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거든. 정말 아니야. 왜일까? 스스로 묻는다. 그걸 몰라서 묻니? 나 때문이지.

남편은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돈을 모으는 스타일이다. 월급을 받으면 그 중에서 절반가량은 꼭 절반은 아파트 대출금 갚는 데 쓴다. 그러면서 말한다. “자기가 좀 도와주면 금방 갚을 텐데.”

그 소리를 지금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이제는 “자기가” 소리만 들어도 그 뒷말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리 집은 거의 남편 돈으로 대출금을 갚아 왔다. 지금은 이 천 만 원 정도 남은 상태.


사람들은 독하게도 모으더라.


맞벌이에 육아를 하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모아 살아가는 사람들. 남편 동료네 가족도 그 중 하나이다. 그 둘은 사내 커플이다. 수리 기사로 일하면서 많이 되지도 않는 돈을 따박따박 모아 우리보다도 훨씬 먼저 좋은 아파트를 장만했다. 아내 되는 사람이 알뜰해서 자신의 월급을 집 모으는 데 많이 보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몇 년 전 그 집에 집들이 갔을 때가 생각난다. 작년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그 당시 우리는 원룸촌 주인세대에서 전세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꽤 이름 있는 아파트를 마련해 집들이를 했다. “수리하러 왔는데 주차할 데가 없어서 몇 바퀴째 주변을 뺑뺑 돌고 있어.” 이 말을 달고 사는 남편의 말이 무색할 만큼 지하 주차장이 널찍했다. 그 당시에는 그 둘 역시도 아이가 없었다. “집 장만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낳으려나 봐.” 남편이 말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새하얀 벽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음으로 눈이 간 곳은 주방이었다. 모든 가전제품이 최신이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가전은 오븐이 달린 가스레인지였다. 붙박이로 되어 있었고 가스레인지의 화구는 무려 네 개였다. 그 둘의 뿌듯했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얼굴은 마치 ‘너무 자랑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말은 하지 않을게. 하지만 우리 집 좋은 거 보이지?’ 하는 것 같았다. 아이보리 색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음식을 먹으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집 좋다!’라는 부러움에 취해 있었다는 것 밖에는.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도 꼭 이런 집에서, 아니 더 좋은 집에서 살자.”

“자기가.”

남편이 입을 열었다. 뒷말을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도와주면 얼른 집 살 텐데.”

난 남편이 할 말을 냉큼 가로채 말했다. 사실 남편에게 할 말이 없었다. 난 그녀처럼 부지런히 돈을 모으는 타입이 아니었다.

아파트를 장만한 지금도 물론 아니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이지만 월급을 받으면 몇 십 만원 겨우 대출금 갚는 데 쓰고 나머지는 모조리 나를 위해 쓴다. 몇 십 만원마저도 지금은 남편에게 못 주고 있다. 지난달부터 카드 값 갚는 데에 월급의 대부분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난 엄청난 카드 값에 허덕이고 있다.

몇 달 전부터 ‘배기 청바지’에 꽂혀 빈 시간이 생기면 늘 ‘배기 청바지’아이템을 찾아 미친 듯이 사이트들을 돌았다. 그리고 볼 때마다 질러버렸다. 그때는 그게 나의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침에 운동하고 나면 시간이 남아서 집 앞에 있는 백화점에 거의 매일 출근 도장을 찍고 학원으로 향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때는 체크카드만 가지고 있었기에 옷을 사도 몇 만 원짜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저 눈요기하는 수준이었다.


시월 두 번째 주 시어머니 생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멋진 옷을 입은 나를 시댁 식구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다. 그 이유로 난 백화점 카드를 만들었다. 백화점 카드로 물건을 사면 오 퍼센트 가격할인은 물론 육 개월까지 무이자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그날따라 무슨 심보였을까. 평소대로 사층 캐쥬얼 매장에 가지 않고 삼층 부띠끄 매장으로 향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는 말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 곳은 신세계였다. 숙녀복이 전시되어 있었고 어떤 기본템을 사더라도 삼 십 만 원 이상이었다. 코트와 같은 주력 상품은 보통 칠, 팔십에 거래되고 있었다. 당시 백화점 카드를 손에 쥔 나는 아무런 겁이 없었다. 도리어 그동안 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느 모피 전문점에서 운명처럼 보라색 코트를 보았다. 내 발은 내 맘보다 먼저 매장 안을 향했다. 사브리나, 라는 모피 전문점. 수백만원짜리 모피를 파는 곳. 그 곳에서 만든 울 백 프로의 보라색 코트.

“안녕하세요, 고객님. 어서 오세요.”

삼층 부띠끄 매장의 점원들은 아주 친절했다. 사층 캐쥬얼 매장 점원들과 비교할 때 세 배 정도 더. 난 거울 앞에서 그 옷을 입어 보았다. 보라색이라 그런지 사람이 안정감 있고 한층 기품 있어 보였다. 오버핏이라서 세련되고 감각적일뿐더러 나의 군살을 잘 커버해주는 것도 장점이었다. 여기는 몇 백만 원짜리를 파는 곳이니까 이 코트 역시도 이백만원 이상 아닐까, 겁을 내면서 가격 택을 보았다.

백 팔십 만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점원이 말했다.

“지금 이 옷은 할인하고 있어요. 백 이 십 만원이에요.”

백 이 십 만원이라. 그러면 육 개월 간 이십 만원씩만 내면 이 옷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이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취해 있었다. 이 옷을 입으면 멋진 커리어 우먼처럼 보일 것 같은 환상에 빠져 있었다.

“그래요, 이걸로 할게요.”


그 후로 몇 십만 원짜리는 다 우스워 보였다. 월별로 계산하면 몇 만원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부 인생에 저당 잡힌 생활이 시작되었다. 명품 매장에 들어가 여름티를 봤다. 댄스 학원에서 입을 티였다. 이번에는 가격 택을 봐도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이미 나는 어느 정도 가격에 익숙해져 있었다. 티셔츠 하나에 삽 십 만원이었다. 하지만 이태리 원사를 사용해서인지 면임에도 불구하고 감촉이 실크처럼 부드러웠다.

“다른 면 티와는 다르게 세탁 후에도 제 모양을 유지해요. 보통 티 사면 한 철 밖에 못 입잖아요. 이건 달라요.” 점원이 말했다.

그래, 이거야, 이거. 나도 명품 티 한 번쯤은 입어보자.

그렇게 티 하나를 샀다. 당시는 초가을이라서 가죽 자켓 역시 유행하고 있었다. 뭐, 육개월로 끊는데 어때.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지나가다가 본 자켓 하나도 그렇게 질러버렸다. 안에다가 삼십만 원짜리 명품티를 받쳐 입고 그 위에 사십만 원짜리 갈색 가죽 자켓을 걸쳐 입으니 내가 봐도 부내가 철철 났다. 여기다가 끝내주는 청바지도 하나 있어야지. 클럽 모나코 매장에 들어가 “부츠컷 청바지 좀 보여주세요.” 당당히 말하고 삼 십 만 원짜리 청바지를 긁었다. 가을엔 국방색 야상 점퍼는 필수지, 오 십 만 원짜리, 다 그렇게 질러버리고 말았다. 이상은 굵직굵직하게 산 것만을 말한 것이고 그 외에 소소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인터넷 쇼핑에도 불이 붙었다. 매일매일 택배가 한두 개씩 왔다. 항상 ‘남편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받아야 하는데.’ 라는 불안감에 마음을 졸이며 집에 도착했다. 나중에는 택배 배달이 왔는데 그 날 아침에 내가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던 바로 그 배기 청바지였다. ‘아니 결제도 안했는데 이렇게 빨리 올 리가 없는데.’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이미 시켜놓은 걸 깜빡 잊은 거였다.


그때는 그저 행복했다. 청구서를 받기 전까지 말이다.


전자 청구서를 보고 기겁했다. 거의 백만 원 가량이 그 달의 카드 값이었다. 문제는 그런 금액을 앞으로 오 개월 동안 내야 한다는 데 있었다. 그때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사채를 빌려 쓰는 여자가 되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남편은 내가 이렇게까지 지른 줄은 상상도 못할 터였다. 고민하다가 남편한테 말했다.

“자기야, 지금까지 내가 월급 받으면 몇 십 만원 대출금 갚는데 보탰잖아. 근데 나 이제 앞으로 몇 달 동안 자기한테 그 돈 못 주게 되었어.”

“왜?”

남편이 내게 물었다. 난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너무 많이 했어.”

그리고 부엌에 가 가위를 가져 왔다.

“미안해, 이제 앞으로는 절대 카드 안 쓸 거야.”

눈물아, 나와라. 참회의 눈물이 나와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젠장. 어찌되었든 눈을 내리깔고 최대한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백화점 카드를 잘라 버렸다. 남편의 불호령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번 일로 많이 배웠어?”

남편의 다정한 목소리가 의외였다. 하지만 내가 얼마를 질렀는지 그 액수를 알고 났대도 그런 아량을 보여주었을까는 의문이다.

그 후로는 백화점에 가도 구경만 할 뿐 사지 않는다. 지난번에는 백화점에 아예 카드를 가져가지 않았다. 세일한다고 사는 몇 만 원짜리가 쌓이면 산이 되어서 돌아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난 아마 그때 환상을 샀던 것 같다. 그 옷들을 입으면 뭔가 근사해질 것 같은 환상을 말이다. 얼마간 사실이기도 하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내 패션 감각을 뽐낼 시월 두 번째 주 시어머니 생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내 옷장엔 야상점퍼, 청바지, 가죽점퍼, 등등 모든 것을 다 갖춰진 상태였다. 그 중 그 날 날씨에 따라 고를 예정이었다.

“자기야, 이번 주 토요일 몇 시쯤 출발해?”

“어? 이번 주 아니야. 다음 주 토요일이야.”

“자기가 이번 주랬잖아.”

“내가 그랬었나? 아무튼 다음 주야.”

곧바로 일기 예보를 찾아보니 다음 주 토요일에는 날씨가 더 추워질 거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야상 점퍼는 너무 추워 보이겠지? 가죽점퍼도 없어 보일 거야.

결국 나는 그 다음 주 토요일, 시댁으로 출발하는 그 날 아침 백화점에 가서 반코트를 샀다. 그렇게 또 카드를 긁고 말았다.


이제 정신 차려야지. 쓸 만큼 쓰고 보니 쇼핑에 대한 욕심도 저절로 줄어들었다. 그래, 쇼핑 테라피를 했다고 치자. 기세 좋게 백화점 카드를 내밀 때의 내밀한 자부심과 기쁨, 점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면서 내가 마치 부잣집 마나님이 된 것 같던 즐거움, 어쩌면 그 당시엔 이런 경험이 내게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라도 소비보다는 저축에 신경을 쓸 생각이다. 육아라는 의무가 없으니 자칫하면 물질적으로 나태해지기 쉬운 것 같다. 하지만 나와 남편에게는 노후에 우리를 보살펴 줄 자식이라는 방패막이 없다.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모아놓아야 한다. 일만 하는 개미도 싫지만 여름철에 노래만 부르다가 얼어 죽는 베짱이는 되지 말아야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된 거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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