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우리 치킨 시켜 먹을까?

자기야 우리 치킨 시켜 먹을까?


전화가 울린다.

남편이다.

“자기야, 오늘 치킨 시켜 먹을까? 갑자기 치킨이 땡기네.”

‘요리하기도 귀찮았는데 잘됐네. 헤헤.’ 하는 생각과 ‘오늘도 또 건강하게 먹기는 틀렸네.’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원래는 오늘부터 집 밥을 해 먹기로 남편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된다. 망하는 길이다. 아니 이미 망했다.

며칠 전, 체중계에 올라서고 난 후 절로 결심이 들었다. 결혼하기 전보다 십 여 킬로나 찐 것이다. 예전 사진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리고 화가 난다.

‘이게 다 남편 때문이야.’ 애먼 남편 탓을 한다.

결혼 전까지 난 부모님과 같이 살았고, 엄마가 유기농으로 해주시는 한식에 길들여져 있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남편을 통해 과자를 비롯한, 라면, 햄버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미혼 때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종류의 음식들. 남편은 저녁으로 라면을 많이 먹는다. 엄마가 알면 뒷목 잡고 쓰러질 일이다. “저녁에 뭐 먹을까?” 하고 물으면 “라면이나 끓여 먹지, 뭐.” 이 소리를 아예 달고 산다. 요즘에는 나도 이렇게 말한다. “내 것도 같이!” 이미 내 혀도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져 가고 있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자. 건강하게 요리해 먹자. 오늘의 메뉴는 된장 찌개였다. 어제 마트에서 사 온 애호박, 감자, 두부를 꺼내려고 냉장고로 향하던 참에 남편의 전화를 받은 거였다. 식탁에는 이미 엄마가 한 달 전에 싸 주신 깍두기를 놓아두었다. 그야말로 간만에 바깥 구경을 한 깍두기였다. 이렇게 억지로나마 식탁으로 내놓지 않으면 몇 달이 지나서 종량제 봉투로 직행하게 된다. 그 동안 냉장고 청소를 할 때마다 음식물 종량제 3리터짜리 봉투로 보통 두 봉지 정도의 상한 음식이 달려 나오는 걸 경험해 왔다.

종량제 봉투의 가장 큰 양을 차지하는 건 죄송하게도 보통 시댁이나 친정에서 얻어온 음식들이다. 일단 시어머니는 손이 크시다. 닭볶음탕에 보통 여섯 마리의 닭이 들어간다. 시어머니 댁은 명절마다 제사를 지내는데 각종 전과 삶은 돼지고기, 삶은 소고기, 잡채 등을 비닐이 터지도록 담아 주신다. 거기에다가 시골에서 농사지은 쌀 20 킬로짜리는 필히 가져가야 하는 품목이다. “집에 쌀 있어요.” 하고 거절하면 그렇게나 온화한 시어머니가 역정 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뒀다가 먹으면 되지.” 쌀을 들고 가지 않으면 마치 반역자가 된 것 같은 분위기이다.

쌀과 전과 고기와 잡채 등등. 그리고 시댁에 가져간 우리 짐까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문을 열 때까지의 시간이 고역이다. 집에 도착하면 팔이 길어진 것 같다.

우리 엄마 집을 방문 할 때는 어떻고. “이거 가져가라.” 하시면서 김치 냉장고에서, 베란다에서 음식들을 가져와 가득가득 담아주신다. 도무지 두 사람이 먹기에 적당한 양이 아니다. “엄마 조금만, 제발.” “놔두고 먹어.” 엄마는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손사래를 친다. 엄마들은 왜 음식을 가져가지 않는다고 말하면 화를 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엄마는 음식을 보통 통으로 담아 주시고 시어머니는 검은 봉투에 담아 주시는데 그 음식들은 우리 집에 돌아와 그대로 냉장고로 직행한다. 그리고 정말 죄송하게도 잘 먹지 않게 된다. 챙겨 먹지 않게 된다고 할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지금 냉장고에도 엄마가 한 달 전 만들어 주신 멸치 볶음과 깍두기가 거의 그대로 들어가 있는 상태이다.

한동안은 반찬 가게를 이용하기도 했다. 반찬 가게에서는 한 번 분량의 음식을 조리해서 파는데다가 설령 남는다 해도 남편이 다음날 아침 챙겨 먹고 갈 만큼 맛있어서 사온 음식이 남는 일은 좀처럼 없다. 희한하게도 반찬 가게의 음식 간은 남편의 입맛에 딱 맞는다. 잘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내가 많든 음식도 저렇게 잘 먹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괘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남편은 늘 내 음식이 싱겁다면서 잘 먹지 않기 때문이다. 비싸게 돈 주고 사온 음식이기에 다 먹어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이 작용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는 안타깝게도 아직 반찬 가게가 들어서질 않아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거나 버스를 타고 세, 네 정거장을 가야만 한다. 그래, 가자면 얼마든지 갈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반찬 몇 개와 국 또는 찌개 하나를 사면 이 만원이 훌쩍 넘는다. 한 두 끼 식사 값으로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무슨 감자조림 한 팩에 삼천 오 백 원이나 해.” 하는 생각이 든다. 한 팩에 감자 두 개 정도 들었을 뿐으로 보이는데. 너무 비싸다, 비싸, 하는 마음에 반찬 가게 이용을 중단해 버렸다.

“우리 마트 가서 장 보자. 이제 집 밥 좀 해 먹자고.”

체중계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남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남편 역시도 나처럼 결혼 후에 칠 킬로 이상 살이 쪄서 배가 동그랗다. 반대하지 않는 걸 보니 그도 더 이상 이렇게 막 먹다간 나중에 당뇨병이나 비만이 올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이제 인스턴트는 그만!

마트는 참 즐거운 곳이다. 일단 북적대서 사람 구경하는 맛이 난다. 꼭 예전 엄마와 시장 다닐 때 사람 구경하던 그 느낌이 든 달까. 엄마는 오뎅 가게 앞에서 오뎅을 사선 항상 내게 오뎅 봉지를 맡겼다.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뜯어먹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마트에서는 시식 코너란 게 있어서 행복하다. 와인 코너에서 화이트 와인을 시음해 보았다. 달짝지근한 게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든다.

자, 이제 출발해 보자. 남편이 카트를 운전하고, 난 남편 자동차 옆자리에 앉아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느낌이다. 얼마간 직진으로 가다 보니 이번에는 오른쪽에 나의 사랑, 커피 시음하는 행사가 있다. 믹스커피 시음 행사이다. 항상 아메리카노만 사 먹는 나에게 믹스커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스트레스 제대로 받은 날 먹는 믹스커피, 달달한 게 당길 때 먹는 믹스커피! 한 잔 해 볼까? 커피면 다 좋다. 그래, 이 맛이야! 설탕과 프림의 적절한 조화! 이 맛을 내가 왜 오래 동안 잊고 살았을까.

얼마간 또 직진하자니 이번에는 드립커피 시음 행사가 나온다. 신기하게도 나무 스틱 아래쪽에 원두 가루가 든 망이 붙어 있다. 거기에다가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바로 드립 커피가 되는 것이다. 오 마이 갓! 이 곳이 천국이구나. 드립 커피로 입을 헹구니 그건 그것대로 맛이 깔끔해서 입안이 행복하다. 마트는 참 고마운 곳이야!

하지만 남편은 썩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

“얼른 사고 가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신없어.”

난 사람들이 많아서 활기차고 좋은데, 남편은 아닌가 보다. 늘 조용한 걸 좋아하는 남편. 그 모습에 사랑에 빠졌었지. 하지만 주말에도 집에만 있을 줄이야, 그땐 몰랐었지. 어쨌든 남편의 안색이 너무나 좋지 않았기에 쇼핑에 주력하기로 했다.

우선 모든 요리에 기본이 되는 양파 한 망과 파 한 다발, 당근 다섯 개, 감자 한 봉지를 샀다. “자기는 여기서 기다려. 내가 사가지고 올게.” 난 육류 쪽으로 가 고기를 구경했다. 뭘 살까. 일단 한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 사랑 한우. 가격이 장난 아니게 비쌌다. 그리고 삼겹살을 쳐다보았다. 남편이 좋아하는 삼겹살. 한우 가격은 삼겹살의 세 배는 되었는데 양은 삼겹살의 삼분의 일 정도뿐이었다. 한우는 다음에 남편 졸라서 사먹어야지, 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고 삼겹살 한 팩을 담아들고 돌아섰다. 다행히 삼겹살을 본 남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다. 보기 싫었다. 이 정도 사람들 뚫는 것도 귀찮아서 카트와 함께 마트 구석에 서 있는 남편이라니.

해산물 코너에서는 다섯 마리가 개별 포장되어 들어 있는 고등어 팩을 샀다. 아침마다 하나씩 구워먹을 생각이었다. 남편은 내가 삼겹살 사준 게 고마워서인지 말린 망고를 사주었다. 그다지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사준다기에 고마워, 하고 받았다. 마지막으로는 삼겹살과 함께 먹을 묶음 채소를 샀다. 둘만 살기 때문에 마트에서 사온 것들이 썩기 전에 먹으려면 그야말로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 날, 일요일 저녁, “이리 와 봐.” 난 남편을 식탁으로 불렀다.

“이제 일주일간 먹을 식단을 짤 거야.”

빈 종이에 칸을 나누며 말했다. 텔레비전에서였던가, 미리 식단을 짜 두고 거기에 맞추어서 쇼핑을 하면 경제적이라 좋다고 했다. 물론 우리는 음식 재료 먼저 사고 식단을 짜지만 이 정도야 시행착오지, 라고 생각했다.

“월요일은 된장찌개가 좋겠어. 얼른 감자에 싹 나기 전에 먹어버리자고.”

“화요일은 삼겹살 먹자.”

“수요일은 당근, 감자, 다 때려 넣고 카레 해먹으면 될 거 같아.”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마음이 든든했다. 이번에는 사 온 것들을 부지런히 먹어서 썩기 전에 다 해치워야지.

이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불과 삼십 분 전만 해도.

“띵동!”

벨소리가 울렸다.

“와! 치킨 왔나 보다!”

치킨! 치킨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치킨! 신이 난다, 신이나.

그래, 오늘만 치킨 먹고 내일부터는 집 밥 먹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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