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봉이

어제 오후 마트 한 구석 쓰레기통에서 미친 듯이 새콤달콤, 아이셔를 입에 처넣다가 생각했다. 언제 식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 새벽 자다 일어나 소파에서 모카빵 하나를 다 먹으며 생각했다. 이놈의 탄수화물 중독.


참자, 참자, 오늘 저녁은 아무것도 먹지 말아보자, 하고 다짐하다 결국 짜파게티를 끓여먹으며 생각했다. 이번 생은 망했다.


지난여름 25인치를 자랑하던 내 허리는 지금 29센치가 되어버렸다. 절구통 몸매. 얼굴은 조석의 ‘마음의 소리’에서 나오는 ‘애봉이’를 닮아간다고 남편 놈은 매일 놀려댄다.


너 때문이야.


왜 저녁마다 ‘골목식당’을 틀어놓니. 어제도 골목식당 보다가 결국 짜파게티 끓여먹은 거잖아. 네가 조미료를 너무 좋아해서 이제 나도 심심하게 간이 돼 있는 음식은 못 먹게 되었잖아.


네가 밥 먹고 꼭 과자를 먹는 통에 나까지 과자의 세계에 몸을 들여놓게 되었잖아.


자유란, 꼭 무언가의 댓가를 요구한다. 식탐으로부터의 자유를 원한다면 지나친 탄수화물과 몸에 좋지 않는 음식을 먹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글쓰는 자유를 얻기 위해 난 아기도 포기했다. 언제라도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말이다.


또 글쓰는 자유를 위해 포기한 게 뭐일까. 음, 번듯한 직장생활? 번듯한 직장 생활을 위해서는 하루 적어도 아홉 시간을 일에 투자해야 하고 글쓰기가 어렵다는 생각, 또는 편견 때문이다. 나는 하루에 네 시간만 일하는 프리랜서 직업을 선택했다. 그게 나이다.


글이 맘대로 써 질 때의 자유.


그 자유가 작가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내 몸은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지만 내 머리 안에서 아이디어와 생각이 마구 돌아다니면서 문장을 만들어낸다. 내 손은 다만 머릿속 문장을 받아 적을 뿐이다. 그 때의 그 자유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유이다.


무엇보다 글 쓸 때의 자유란 내가 쓰고 싶은 걸 내 식대로 표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평소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였다. 그건 지금도 그러하다. 그때 난 그 작가에게 내 고민을 이야기했다.


“작가님, 전 소설 쓸 때 늘 제 이야기만 쓰는 거 같아요.”


작가는 내 말을 이해한다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조금만 시각을 바꾸면 되는데, 제 삼자. 남자나 혹은 다른 성, 아이의 시각에서 생각하면 될 거에요.”


그녀는 내게 경어를 썼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듣자 나의 시각으로 내 이야기를 쓰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겪은 일, 그렇게 별다르게 살아오지 않았다 해도 내가 깨달은 일을 말하고 싶다는 것. 그게 내가 쓰고 싶은 글일 뿐이다. 이게 나에게는 글 쓸 때의 자유이다.


핫도그를 데운다.


‘자유’에 대해 쓰기 위해 235kcal의 대가를 지불한다.

keyword
이전 29화자기야 우리 치킨 시켜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