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더 친해져요, 남편님

우리, 더 친해져요, 남편님


“우리 뭐 하나 같이 하는 취미 만들자.”

“갑자기 왜?”

내가 생각해도 뜬금없는 제안이다. 요새 갑자기, 우리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먹고 뉴스 같이 보는 그런 시간 말고, 우리 둘 다 빠질 수 있는 취미를 함께 즐기는 시간 말이다. 목적은 취미를 공유하며 좀 더 친밀해지기이다.


‘서로 알아가기 프로젝트’


얼마 전 본 과거 동료의 페이스북도 동기 부여가 되었다. 그 부부는 나와 함께 일하던 어학원 강사들이었는데 우리와 같이 딩크족이었다. 그들은 등산을 취미 삼아 주말마다 산을 찾아 돌아다녔다. 월요일이면 주말에 다녀온 산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곤 했다. 한국에 있는 일 년 동안 모든 국립공원을 다 돌았다고 한다. 그들의 산사랑은 미국에 돌아가서도 여전한지 얼마 전 올라온 페이스북의 사진 속에서 그녀와 남편은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얼굴을 맞대고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었다.


“게임 같이 해볼래?”

응, 아니야. 난 게임이라면 질색인 사람이다. 가끔 남편이 컴퓨터 게임 화면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정신없이 손가락을 놀리며 총 쏘고 있는 걸 보면 저런 걸 왜 하고 앉아 있는 걸까. 도대체 사람 죽이는 게 뭐가 재미있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꼴을 더 보고 있다간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질까 봐 황급히 남편 방문을 닫고 거실로 향하는 나이다.

“컴퓨터 게임?”

“응.”

“폭력적인 게임 아닌 걸로 하면 찬성이야.”

백 번 양보해서 비폭력적인 게임을 제안해 본다.

“폭력적이지 않은 게임도 있어?”

할 말이 없다.

“‘문명’ 이라고 있잖아. 도시 건설하는 거.”

이번엔 그가 말이 없다. 싫다는 의미이다.


“차 도색하는 건 어때?”

남편의 이차 제안이다.

“아니, 전혀 관심 없어.”

자동차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색칠해서 거실에 전시해 놓는 건 남편의 취미이다. 그걸 만드는 동안 방은 온통 난장판이 된다. 그리고 도색할 때 페인트 냄새는 꼭 초등학교 미술 시간 때 맡았던 본드 냄새처럼 지독하다.


“인형 만들기는 어때?”

이번에는 내가 제안해 본다.

“피규어?”

오랜만에 남편 눈이 반짝인다.

“아니, 봉제 인형.”

도란도란 이야기 하면서 미싱도 돌리고 바느질도 해서 아기자기하게 인형을 만들고 싶다. 그 얼마나 평화로운 취미인가. 이번에도 남편은 말이 없다.


“아! 김치찌개 먹고 싶다.”

남편이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한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들어 유투브 동영상을 틀어 보여준다. 영상 속에서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돼지비계 덩어리를 믹서기로 갈아서 김치찌개에 붓고 있다. 빨간 국물이 순식간에 분홍색으로 변한다. “김치찌개 맛 집의 비결은 뭔지 알아? 비계를 국물 베이스로 쓰는 거야.”

보고만 있어도 속이 느글느글하다.


달라, 달라, 달라도 너무 달라.

연애 때는 우리가 아주 잘 맞는 사이라고 느꼈지만 실전은 연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결혼하고 나서 구 년 동안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에 바빴다. 싸움과 갈등을 반복하며 구 년이 지나서야 이제 겨우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는 법을 익힌 것 같다.


비밀노트에 썼던 ‘이상형’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은 것도 우리 관계가 좋아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내 마음을 나처럼 알아줄 사람’이란 개뿔. 그건 마치 유니콘처럼 실제 존재하지 않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지난 구년간 다사다난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 현실 도피를 위해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그 환상을 내려놓으니 남편이 그저 사람으로 보였다. 게임과 오락을 좋아하는 배려심 많고 성격 좋은 사람. 이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것.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게 정신 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거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나는 다만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이 단순한 깨달음을 몸으로 체득하기 위해 난 지난 일 년 간 약을 먹었고 지금도 먹고 있다.

또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다지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별 볼일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모두가 소중하고 위대하다. 한 명 한 명.

인생의 중반기에는 다름을 토대로 남편과 공통분모를 발견해 나가고 싶다. 나도 안다. 그는 게임 덕후이고 난 글쓰기 덕후라는 것을. 서로 간에 공통점이란 같이 보는 드라마 정도라는 것도. 하지만 이제 텔레비전을 같이 보는 것에서 벗어나 실제적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그 어떤 취미 활동을 함께 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같이 하자고 해도 폭력일 것이다. 그가 하고 싶은 활동을 따라 한다 치면 억지로 하는 재미없고 지루한 일이 될 것이다.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하나, 하나, 실험 하듯이 도전해 본다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듯이 우리도 우리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취미 생활을 같이 함께 하며 함께 웃고 싶다. 그 취미가, 무엇이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결혼 구년 차, 서로를 알아가기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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