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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Apr 05. 2021

집착 또는 진실

모든 것은 나의 집착에서 시작되었다. 


남편을 향한 집착과 소유욕으로부터 모든 비극은 시작되었다. 지금 나는 남편과 이혼하고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큰 언니 네서 버티고 있지만 조만간 이 집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모두들 나를 피하고 있으니까.      


처음 명절을 맞으러 시댁에 가는 날이었다. 난 나름대로 정숙하게 입고 남편 옆에 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징후도 없었다. 나중에 큰 싸움에 휘말린다는 걸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난 슬슬 남편의 허벅지를 문질렀고 남편은 내 손을 살그머니 쥐면서 시댁을 향했다.      


그 집. 시댁에서 난 마주쳤다. 형님, 남편 형의 아내란 사람을. 


그리고 충격 받았다. 그 사람의 옷차림에 대해서. 


무슨 나이트 클럽에 온 것처럼 하고 시댁에 온 것이었다. 오 마이 갓!


연갈색 풍성한 웨이브 머리에 반짝거리는 링 귀걸이, 그리고 검은 어깨 트임 티를 입고. 청바지를 입었는데 찢어진 청바지였다. 몸매가 좋아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난 바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남편과 형수는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둘이서만 웃고. 형님이란 사람은 나에게 한 마디도 붙이지 않고 오직 남편과만 이야기했다. 난 알고 있었다. 형수가 십여년 전부터 시댁에 들어와서 살고 있었고 거기서 아기를 낳았다는 걸. 그리고 자기 남편이 군대에 간 사이 첫째 아이를 낳았다. 내 상상 속에서는 내 남편이 마치 그 조카의 아빠인양 예뻐해주고 얼러주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그 여자는 딱 붙어 있는 장면.      

가슴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음식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첫 시댁 방문인 만큼 난 잘하진 못하지만 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 부치기를 자처해서 열심히 전을 부치려 했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뒤집고.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형님은 나에게 타박을 주었다. “기름을 더 둘러. 이거 다 타겠네.” 더 돌겠던 건 남편 역시도 거기에 동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둘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름을 더 둘러, 이거 다 타겠네.”      


그 뿐이 아니었다. 맛살 전을 만드는데 내가 남편에게 “세등분으로 자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할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던 남편이 형수가 바로 “세 등분으로 자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하자마자 세 등분으로 자르는 것이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밖으로 뛰쳐나왔다. 남편도 따라 나왔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남편은 내게 소리를 질렀다. “자기는 왜 내 말은 안 듣고 형님 말만 들어?” 나는 화를 냈다.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했다. “지금 그런 일로 화를 내는 거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이해할 수 없어. 이해할 수 없다고. 얼마 후에는 남편이 군대 중에 형님이 보낸 위문 편지도 발견했다. ‘가족 중에 시동생, 즉 내 남편이 가장 편하다고.’ ‘전화오면 자기 안 바꿔 줘서 서운하다고.’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 후로는 시댁에 가면 나의 레이더망은 오직 그 두 사람을 향했다. 서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쓰여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큰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 년이 남편에게 뭐라고 질문하는 중이었다. “요새 하는 일은 어때요?”

요지는 너무나 평범한 질문이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순간 나의 모든 화가 집중되었다. 

“이 썅년! 시동생이나 꾀려고 하는 썅년. 씨발년.”

순간, 그 싸해진 분위기란.      



난 가방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남편이 따라나오지 않았다. 

집에 와서 짐 정리를 하고 모든 일은 변호사를 통해서 해결했다.      


왜 사람들은 다 내게 “네가 너무했어. 오해한 거야.”라고 말할까. 내가 너무한 걸까. 내가 미친년인 걸까. 아직도 모르겠다. 이제 새 집을 알아보고 있으니 곧 이 집도 나갈 거다. 큰 언니의 외면도 이제는 참기 힘들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내가 너무했다고.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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