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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Mar 07. 2021

귀가

 귀가 길은 언제나 즐겁다. 여섯시 십 오 분에 일하는 학원에서 칼같이 귀가한다. 학원에 나와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오 분 남짓한 거리이다. 거기서 난 학원 학생을 만나기도 한다. 그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횡단보도에 서 있다. 난 직진하는 횡단보도를 이용한다. 우리 사이에 구십 도 가량의 각도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난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할까? 무단 횡단을 해도 될까?” “학생이 볼 텐데. 그럼 난 선생으로서 귀감을 잃는 건데.”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보낸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 나는 무조건 무단횡단을 한다. 학원 애들이 보건 말건. 이래선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버스에 탄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힌 가로등들이 구토하듯 노란 빛을 내뿜는다. 도시의 오물을 받아먹는 한강의 음울한 얼굴을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위로하며 지나간다. 하루라는 오물을 뒤집어 쓴 내 몸도 딱딱한 의자 위에서 맥없이 늘어진다. 늦은 밤인데도 차 안에는 귀가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저마다의 하루가 무겁게 깔려 있어 그런지 좌석 위의 노란 등이 더욱 어둡게 느껴진다. 다들 피곤에 전 채로 조용히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거나 생각에 빠져 있어 버스에 올라타는 이에게 눈길을 주는 일조차 없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안부를 묻고 싶어. 잘 지내니. 어떻게 지내. 누구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 네게 가고 싶어. 하루의 끝자락을 여며주던 그 입술로, 가슴으로.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 너. 


 어디에 있니. 어떻게 지내. 너 역시 내 생활이 궁금하겠지. 너와 헤어지고 난 이제부터는 가슴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자고 결심했어. 나만의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하며 여기까지 걸어왔어. 하지만 가끔 회의가 엄습해 와. 이런 깊은 밤, 너의 품에 안겨 잠을 자고 너와 섹스를 하고 네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사는 것보다 지금의 내 삶이 더 행복한 건지, 과연 그런 건지. 그런 삶은 이제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멀어졌기에 이런 말도 하는 거겠지만. 


  버스는 도로변에 급하게 나를 토해 놓고 달려간다. 아파트 곳곳에 재개발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지은 지 삼십 년이 넘은 열 평짜리 주공 아파트. 재개발이 착수되면 곧 방을 구해 나가야 한다는 게 계약서 조항 중의 하나였지. 아파트의 외벽에는 수 없는 작고 큰 얼룩이 있어. 간간히 발견되는 길고 깊은 틈. 그 틈을 메우지 못하고 결국 재개발을 한대. 틈이란 건 메울 수 없는 건가 봐. 나 역시도 너와 나 사이에 점차 생겨나는 틈을 막지 못했으니까. 그 틈이 어디서 생겨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난 점차 무기력해졌어.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아. 내가 네게 과도하게 기대기 시작하며 관계라는 흰 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걸. 지금 난 그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몰라.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꽉 움켜쥐었던 글쓰기가 사실은 신보다 인간인 네게 더 많이 의지했던 죄에 선고된 가혹한 형벌인지도. 곧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방에 갇혀 빈 종이에 마침표만이 난무하는 글을 써내야 하는 천형.   


 내가 사는 아파트 동 앞에 갔을 때 누군가 문에 기대어 있는 걸 본다.. 


 오 마이 갓! 


 이게 누구야. 그이다. 나를 떠나간 그 사람. 눈물이 줄줄 흐른다. 


 “미안해. 아프게 해서.”


 그가 말한다. 괜찮아, 다 괜찮아. 내게 돌아오기만 하면 돼. 


 이제는 다시 시작이다. 


 안아줘, 그냥 날 안아줘. 이제 내 글은 느낌표로 완성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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