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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Apr 05. 2021

포항 아저씨

나에겐 특별한 아저씨가 한 분 계시다. 그 분은 내가 다녔던 대학교 내 수선실에서 일하시던 분이시다. 한 때는 아저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시절. 고백하건대 나는 아저씨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사실대로. 나는 한 번도 솔직하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응대했을 뿐이었다. 아저씨는 그런 내게 뭔가를 이야기하라고 추궁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아저씨의 이야기를 해 줄 뿐이었다. 그것은 인생의 교훈이라던지, 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저 아저씨 삶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과거의 편린들, 그리고 현재의 생활의 조각을 조금 꺼내어 보여 준 거였다. 서울 어딘가에서 구두 기술을 배운 이야기. 요래 해서 그리 했던 거라, 이게 아저씨의 말투였다. 지금도 아저씨의 그 말투와 표정이 생생히 기억난다. 내 눈을 바라보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아저씨.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변호하는 게 아니라, 그저 아저씨에게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는 아저씨의 모습. 그에 비하면 나는 그저 열심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아저씨의 그 큰 목소리와 이야기만으로도 내게는 일상을 이겨낼 위안이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 아저씨의 프로포즈였다. 아저씨가 사모님에게 어떻게 프로포즈했는지를 듣고 돌아온 밤, 나는 몇 번이나 머리속으로 그 장면을 재현했다. 겨울날 만난 그녀에게 눈을 뭉쳐준다. 그녀는 눈뭉치를 받아든다. 묵직한 무게감에 그녀는 의아해한다. 그는 그저 웃고 있다. 햇살에 받아든 눈뭉치는 점차 녹는다. 빨간 사과 한 톨이 드러난다. 이건 비밀이래이. 나랑 열살 차이가 난대이. 아저씨는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없다면서 나에게 이야기했다. 


아저씨는 딸과도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한다. 아저씨는 나이에 관계없이 젊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고지식하고 엄격한 공무원인 아빠를 떠올리며 그 딸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공교롭게도 아저씨는 아빠와 같은 연배였다.


아저씨는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산살을 수선하거나 그런 것을 아주 잘 해주었다. 우산을 고쳐주는 것. 완전히 고장 난 우산들을 가져다가 아저씨에게 주면 마치 어릴 적 고물상에 유리병을 갖다 줄 때처럼 신이 났다. 아저씨는 내가 두 번째로 친한 친구라고 했다. 그리고 수시로 첫 번째로 친한 언니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언니의 고향이며, 지금 사귀는 사람에 대해서. 나보다 사년 선배인 그 언니가 지금 근무하는 회사며, 언니의 고민들까지. 육아 문제까지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두 번째라는 사실에 내심 안도했다. 나는 아저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데 만약에 첫 번째로 친하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부담스러울 터였다. 나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편했다.


아저씨. 제가 만드는 영화에 나와주실래요? 영화는 방학 때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과 아저씨와의 교감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학생의 실제적인 모델은 바로 나였다. 말하자면 외로움에 떨고 있는 학생이 아저씨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기운을 차린다, 하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방학 때 촬영을 하기로 했는데 나는 그 전에 학교를 돌면서 학생들이 두고 간 신발을 공수했다. 그리고 그 중에 닳아서 밑창이 너덜너덜해진 구두를 집어 들고 환호했다. 화요일이 되자 아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이 이 구두를 가져오면 아저씨가 기워주시는 거예요. 아저씨에게 너덜너덜해진 구두를 보여주자, 아저씨는 반사적으로 바늘을 찾았다. 아니요. 지금 말고, 영화 찍을 때요. 그럼 다음 주 화요일 오후 두 시에 할게요. 


아저씨는 정확히 그 시간에 나타났다. 몹시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내는 괜찮대이. 아저씨는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아저씨가 병원에서 잠시 나와 촬영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저씨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바늘을 그러쥐고 한 손으로 구두를 꾹꾹 눌러가면서 바느질을 한다. 상대 학생에게 말한다. 밥을 잘 묵어야 할 텐데. 그리고 자신이 먹으려고 사 둔 바나나 우유를 건넨다. 학생은 그걸 마시다가 아저씨의 손수 기운 슬리퍼를 발견한다. 용무가 있어 시내에 나간 학생은 아저씨에게 새 슬리퍼를 사 준다는 내용이었다.   


졸업한 지 이년. 지금 난 바로 그 아저씨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아저씨, 제가 지금 갑니데이. 쪼매 기다리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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