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명 Apr 06. 2021

이상한 일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중간고사 때는 시험 기간 내내 교실에서 밤늦도록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시험 때는 교실에 오래 남아 있는 아이는 몇 없었다. 며칠 전 있었던 살인 사건 때문이었다. 그 학생은 새벽 두 시쯤 혼자서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폭행을 당하고 죽었다. 


여섯 시쯤 되자 교실은 휑해졌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가정 교과서를 읽고 있었다. 그 때 누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인사만 하고 지내던 아이였다. 평소에 별 말없이 죽어지낸다는 점에서 나와 비슷한 아이였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과 말이라도 섞고 있는 것과 달리 그 아이는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아예 없었다. 그 아이는 싱글 웃고 있었다.


 “밥 먹으러 가자.”

 마침 배가 고팠기에 나는 그 애와 매점에 갔다. 그 애의 이름은 혜경이였다. 우리 학교는 중학교, 고등학교가 붙어 있었다. 매점은 중학교 건물에 있었다. 중학교는 이미 썰렁했다. 불 꺼진 복도를 지나 매점에 도착했다. 빵과 우유를 사고 의자에 앉았다. 


  “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뭘?”

  “목산 고등학교 다니는 내 친구가 있는데.”


  목산고라면 이 곳에서 가장 공부 못하는 애들이 가는 학교였다. 

  “어.”

  “우리 학교 선생이 따 먹었다.”

  충격이었다. 


  하지만 조금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긴 했다.

  “철학?”

  “아니.”

  “그럼?”

  “미술. 그 사람 집에서 했는데 집어넣으면서 울었대. 비밀이야. 더 웃긴 거, 그 새끼가 절대 교복 못 벗게 했대.”

  

싸이코 새끼. 난 갑자기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은밀하고 축축한 곳. 그 애는 날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 너랑 친해지고 싶어.”

  “갑자기 뭔 소리야?”

  “넌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같은 종류야. 색깔만 다른 눈깔사탕이라고나 할까.”

  “웃기시네. 가자.”      


 그 무렵 어떤 흥분 같은 게 학교 전체를 후끈 감싸고 있었다. 아이들은 일견 뭔가에 신이 난 듯도 보였다. 선생님들도 활기에 차 있었다. 밤일만 하느라 학교 오면 축 처지는 게 분명해. 늘 충혈된 눈으로 등장해서 칠판에 문제만 가득 풀다 돌아가던 수학의 목소리에도 힘이 붙어 탱탱했다. 그렇게 일 학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여러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 놈을 잡았어요.”

조회 시간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놈’이라 말하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 놈은 외국인 노동자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수사망이 좁혀지자 야산에 목매달아 죽었다고 했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수학은 문제 풀이에만 열중할 뿐 다시 우리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으며 지긋지긋한 야간 자율학습이 다시 의무로 시작되었다. 혜경과도 복도에서 무표정하게 지나갔다. 원래 혼자 지냈던 나는 이게 오히려 편했다. 


 이게 최근에 우리 학교에서 있었던 참 이상한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포항 아저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