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떡볶이를 산다. 이 떡볶이는 약간 달큰한 맛이 돌 것 같다. 적당히 주황빛이 도는 윤기 나는 떡볶이 소스와 납작한 쌀떡. 지나갈 때마다 먹고 싶었지만 양복을 입고 차마 들어갈 수가 없어서 난 늘 가게 앞을 지나치기만 했다. 지나치기만 해도 냄새만으로 맛있는 떡볶이 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매운 맛은 맛이라기보다 통증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통증을 치유하러 엔돌핀이 나오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매운맛을 찾는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통증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엔돌핀을 구하는 걸까. 둘 다일까.


안녕하세요,


들어서며 일부러 기세 좋게 인사를 한다. 내 얼굴에 쏟아지는 여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남의 얼굴을 쳐다보는 게 무례한 행동이라는 걸 이 젊은 아가씨들은 알려나. 물론 내게 그들의 얼굴을 마주볼 생각은 없다. 쳐다보지 않아도 금세 지루해졌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걸 알 수 있다. 잘못 들어왔나 싶다. 이 집에 양복은 좀 안 어울리긴 하다. 요새 회사에서 잘렸다는 걸 부모님에게 알리기 싫어서 집을 나올 때는 양복을 입고 나온다. 다행히 금세 앞치마를 입은 아줌마가 등장한다.


떡볶이 좀 주세요.

얼마나 드릴까.


횡단보도에 선다. 오른 손에 든 비닐봉지가 묵직하다. 왼손에 든 서류 가방이 더욱 가볍게 느껴진다. 이인분이요, 순대하고 튀김도 주시구요. 난 지금 친구한테 가는 중이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니까 안 지 십년이 넘었다. 그 친구놈과는 농구 끝나면 늘 학교 앞 떡볶이 집에 가서 떡볶이를 먹었다. 그 놈이 최근에 커피숍을 열었다. 카운터와 테이블이 겨우 세 개 있는 작은 곳이란다.


우리 학교 앞에서 먹던 맛 생각나네.

난 그에게 말을 건넨다. 마침 종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옆에서 열심히 포크질을 하던 친구 놈이 잽싸게 일어나 카운터로 돌아간다. 손님이 카운터 앞에 와서 서자 친구 놈 안색이 환해진다. 내가 들어올 때와는 비교 못 하게 환한 얼굴이다. 꼴에 웃음까지 띤다. 내가 아는 놈이 아닌 듯싶게 사근사근하게 굴어서 민망해질 정도다.


손님이 커피를 받아든다. 난 무의식중에 그 손님의 얼굴을 본다. 친구 놈의 좋아죽는 얼굴과는 상반되게 도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손님이 자리를 잡자 친구 놈은 가게 문을 열어젖힌다. 분식 냄새 나는 게 신경 쓰이나 보다. 내 옆에 와 앉아 있지만 음식엔 손대지 않는다. 말도 거의 없다. 나라도 열심히 먹는 수밖에 없다. 배가 터질 거 같다. 음식이 거의 없어질 즈음 사라지더니 아이스커피를 가지고 나타난다. 후식이야.


떡볶이 따위를 사가지고 오는 게 아니었다. 떡볶이 가게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한다. 추억의 문은 함부로 여는 게 아니었다. 어쨌건 이 놈 참 쓰다. 야, 시럽 내놔라. 저기 있잖아.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온다. 난 시럽을 듬뿍 넣고 뚜껑을 닫아 섞이도록 흔들며 밖을 나온다.


횡단보도에 서자 아스팔트 열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해는 쨍쨍하다. 초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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