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다의 꿈

우리 동네에 새 미용실이 오픈했다. 거대 체인점에 준하는 또 다른 거대 체인점이다. 원래 독점하다시피 세력을 과시했던 P헤어에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점차 불만의 말들이 늘어갈 무렵 들어선 체인점이라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P헤어는 내가 사는 시에만 해도 열 개가 넘는 지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타성에 젖어 가는 듯 했다. 그즈음 옆 건물에 새로운 큰 미용실이 생기고 나는 그 집을 이용하기로 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딜 가도 시스템은 비슷하다. 유리문 너머로 정장을 입고 마이크를 맨 처자가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건넸다.


“찾으시는 디자이너분 있으십니까.”


“처음인데요.”


“오늘 어떤 머리 스타일 생각하시나요.”


“볼륨 매직 하려고요.”


“네 조금만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녹차 커피 뭘 드릴까요.”


“괜찮아요.”


그제야 그녀는 물러났다. 테이블에 앉아 잡지를 보니 ‘돈 없이 배낭여행 가기 위해 챙겨야 할 12가지’ 표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곧 경직된 미소를 띈 여자가 내 옆으로 왔다.

“손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헤어디자이너는 풍성한 웨이브를 하고 진한 화장에 검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단발로 자르고요 볼륨 매직 하려고요, 너무 어려보이지 않게 해주세요.”


그녀는 거울을 바라보며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멈추었다가 옆 시다에게 뭔가를 준비해 달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 때 처음 시다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내가 놀란 건 그녀의 발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하이힐이었다.


그녀의 발은 무지막지할 정도로 퉁퉁했다. 완전한 평발에다가 살이 풍성하게 찌어 있었다. 허벅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발이 하이힐 안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하이힐을 신는 건 그 미용실의 규정이던지 모두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이 쪽으로 오세요. 머리 감겨드릴게요.”


미용실에서 누가 머리를 감아 줄 때, 나는 그 시간을 정말 사랑한다. 머리를 감겨주는 상대에게 미안함을 느낄 정도이다. 샴푸를 하면서 머리 이곳 저곳을 눌러주는 두피 마사지를 받고 나면 머리가 시원해진다. 그리고 내게 서비스를 베풀어주는 그녀에게 친근감이 든다.


타인의 머리를 하루 종일 감겨주는 걸 생각하니 너무 불쌍하다. 왠지 내가 부르주아가 되어서 착취하는, 계급투쟁과 같은 생각이 드는 거다. 이 세기에도 여전히 12시간씩 서서 저 뚱뚱한 몸집에 하이힐을 신고 짧은 치마를 입고 일을 하는 노동자.


도리어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나를 자리로 안내했다. 디자이너는 뭔가를 지시한다. 근데 시다가 뭘 빼놓고 온 모양이다.


“왜 자기 껀 안 가져와요. 안 할 거예요?”


그 말을 하는 음색이 차갑다.


“아 저는 여기 있는 줄 알고.” 시다가 태연히 대답한다.


파마를 하는 건 세 시간이 걸린다. 적지 않은 시간이다. 열기구 아래에서 머리에 랩을 싸고 앉아 있을 때 다시 그 시다가 다가온다. 왠지 반갑다.


“제가 손 마사지 해 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신문 사이에 끼어 있던 전단지 내용이 생각난다. 새로 방문해 주시는 고객에게는 2만원 상당의 네일 케어를 제공한다고 써 있었다.


“아 전단지에 나와 있던데, 네일 케어 해주시는 거예요?”

“아니에요. 사실 그건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토요일부터 될 거에요. 손 마사지는 원래 해드리는 거구요.”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손가락을 확확 잡아당긴다. 사실 아프다. 하지만 난 아픈 게 아니라 시원한 거다 라고 내 스스로에게 말을 한다. 뭔가 말을 해야 하는데 마땅히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보고 있던 패션 잡지의 옷을 가리키며 “이 옷 진짜 이쁘지요?” 하고 말을 걸어본다.


그녀는 갑자기 내 말에 놀란 눈치다. 하지만 능숙하게 말을 받는다.

“예, 요새는 참 이쁜 니트가 많아요. 많이 나와요.”

그러고 보니 손이 참 예쁘다.

“어? 손이 참 예뻐요.”

여자는 부끄럽다는 듯이 대답한다.

“네, 전 이상하게 손이 망가지지 않더라고요.”


아마 이 여자의 꿈은 디자이너가 되는 거겠지? 디자이너가 되더라도 12시간을 서서 일하는 건 마찬가지이겠지만 말야. 그렇게 될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못해도 4년은 걸린다던데.


여자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이 상자 하나를 가져온다. 거기에는 온갖 색의 매니큐어가 들어있다. 오십 개는 되는 것 같다.


“손님 제가 매니큐어 칠해드릴게요. 이 색 진짜 예뻐요. 제가 진짜 이쁜 거 해드릴 거예요.”


그러면서 내게 의견도 묻지 않고 청색과 흰 색을 꺼낸다. 나는 사실 매니큐어, 손톱 장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왠지 그냥 놔둬야 할 거 같은 생각에 가만히 있다. 그녀는 몇 방울씩 손톱 위에 떨어뜨린다. 그리고 이쑤시개로 섞는다. 순식간에 소용돌이 모양의 무늬가 만들어진다.


“우와, 이거 전문적으로 배운 거에요?”

“아니에요. 혼자.”

“대단하시다.”

여자는 칭찬에 고맙다는 듯 배시시 웃는다.


다른 쪽 손을 막 내밀고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말을 뱉는다.

“근데 어디 살아요?”

“왜요?”

순식간에 정적이 흐른다. 무슨 말인가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에 디자이너가 다가온다.


“매니큐어는 그만 하고, 얼른 가서 준비해줘요.”

“이따 해드릴게요.” 시다는 사라진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간다. 시다는 내 오른쪽 머리를 만다. 디자이너는 왼쪽을 만다. 나는 속으로 이 미용실이 싫어진다. 어떤 미용실에서도 시다가 직접 손님 머리를 마는 적은 없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디자이너는 시다를 혼내기까지 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제대로 안 할래?”

하지만 시다에게서 미용기기를 뺐지 않는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파마가 끝나고 디자이너는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내게 “파마가 너무 잘 나왔어요.” 하고 말한다.


나는 옷을 찾아 입고 돈을 지불한 후 미용실을 나온다. 예상대로 시다가 만 오른쪽은 왼쪽처럼 웨이브가 잘 말리지 않는다.


학교에 가니 만나는 사람마다 머리 잘 어울린다고 야단이다. 어느 눈썰미 좋은 후배가 언니, 근데 왜 오른쪽 손톱은 매니큐어 안 했어요? 묻는다. 집에 오는 길에 매니큐어 지우는 용액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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