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게 싫어.
예전에는 비 오는 게 매우 낭만적으로 들렸지만 사회인이 된 지금 나는, 비가 오는 게 매우 거추장스럽다. 비가 오면 어떤 옷을 입든, 어떤 우산을 쓰던, 비를 맞게 되기 십상이고 한마디로 스타일이 구겨지게 된단 말이다.
“오늘 비 온다니까 우산 가져가라.”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나온 게 실수였다. 왜 그랬을까, 내가. 출근할 때 날씨만 보고 우산을 챙기지 않았고 그 결과 이제 지하철역까지 비 세례를 받아야 한다.
누가 나한테 “우산 같이 쓰실래요?” 하면서 접근해 오는 사람이 있으리란 건 이미 기대를 접은 지 오래이다. 나 같은 고도 비만에 자신감 없는 여자가 무슨 매력이 있단 말일까.
대부분의 직원들은 차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 또 길 한참 밀리겠구만.”
“어쩔 수 없지 뭐.”
이 부서에서 차가 없는 직원은 나뿐이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폭우는 계속됐다. 비오는 게 신경쓰여서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따가 귀신처럼 머리가 다 비에 젖은 채 지하철을 타는 게 이미 마음속에 그려져 있었다.
그때였다.
이대리가 나에게 커피 한 잔을 들고 다가왔다.
“미선 씨, 오늘 우산 가지고 왔어요?”
“아니, 그게 깜빡 잊었어요.”
“오늘 퇴근할 때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줄까요?”
어머, 어머,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대리라면 능력을 인정받는 출중한 인재가 아니던가. 얼굴 생김새도 귀공자 타입의 사람이다.
“정말요? 안 그래도 괜찮아요. 그냥 갈 수 있어요.”
난 거절을 했다.
“그럼 이따 퇴근 시간에 보도록 해요.”
그 이후의 시간은 꿈 같이 지나갔다. 어떻게 내가 이 대리의 차에 탈 수 있을까. 혹시 나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닐까. 왜 이렇게 나에게 마음을 써 주는 거지?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예전부터 나를 봐 왔던 것 아닐까. 그러다 이렇게 비 오는 날, 내게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해서 지금껏 기다린 거야.
내 표정이 달라진 걸까. 사람들 역시도 내게 엄지척을 해오는 등의 제스쳐를 취했다. 너무나 창피스런 일이었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에 벅차올랐다.
비야, 비야, 그치지 말아라.
운이 없는 사람은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내가 곧 그 꼴이었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언제 폭우가 쏟아졌냐는 듯이 하늘이 맑게 개기 시작했다. 아니 이런. 난 속으로 각종 욕을 해댔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저한테 이런 시련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 줬다 뺏는 경우가 제일 치사한 거라고요.
퇴근할 무렵이었다. 이대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다행히 비가 그쳤네요. 그럼 내일 봐요.” 이대리는 그렇게 멀어져 갔다. 그 이후로 나는 출근길에 비가 오지 않는 한 절대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누가 어떤 날이 제일 좋냐고 묻는다면 ‘비 오는 날’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