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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Apr 06. 2021

결혼한 후 방문한 첫 시댁에서 내가 처음 마주한 건 형님, 그러니까 남편 형 아내의 '찢어진 청바지와 어깨트임 티'였다. 물론, 무에다가 계란물을 묻혀 만든 무전, 다시마와 파를 넣고 크게 부친 전 등 여러 상상할 수 없는 각양 각색의 전들도 문화 충격이긴 했지만 형님의 까만색 어깨트임 티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건, 파격이었다. 

좋은 의미이건 나쁜 의미이건. 

'아니, 시댁에 어떻게 어깨 트임 옷을 입고 올 수가 있어?'

속으로 이렇게 생각이 되었고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되는 걸까?"

장소에 맞는 옷차림이 있다고 속으로 생각해 온 나는 시댁 = 정숙한 옷을 입고 오는 곳이었다. 

하지만 형님은 그런 공식 따윈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첫 제사 음식을 만들어보는 나에게 어깨 트임 옷을 입은 형님은 이것저것 타박을 했다. 

"기름을 더 둘러야지, 타겠네."

결혼 전에 음식이라고는 라면을 끓여먹은 게 전부였던 나이다. 

타박을 들을 때마다 서러웠다.

난 잘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데, 허둥지둥 기름을 두르고 있는데 꼭 뭐에 쫓기는 거 마냥 마음이 불안했다. 

그때를 다시 생각하자니 지금도 분노가 치민다. 그 상황이 다 끔찍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을 만들고 있어야 하는지. 

기름 냄새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래도 난 잘해보겠다고, 잘 보이려고 뭐라도 하나라도 더 하려고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데 타박이나 받고, 그 현실이 정말 젠장스러웠다.  


8년 후인 지금 생각해도 싫다.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딴 거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었다고. 하는 시늉만 하고 술렁술렁 즐기면서 해도 음식은 어떻게든 다 완성되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나에게는 꼭 두 명의 시어머니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명은 어깨 트임 옷을 입은, 겉모습만 파격적인 시어머니, 그리고 또 한 명은 맘 따스한 진짜 시어머니. 

내가 시댁살이를 한 사람은 겉모습만 파격적인 시어머니였다. 


그건, 형님이었다. 

호칭도 이상한, 형님. 형님! 형님, 이라고 현실 세계에서 누가 부르는가. 

조폭들이나 형님, 형님 거리지. 


이건 딴 이야기지만 정말 시댁 관련해서 호칭은 개좆같다. 

아주버님, 도련님, 형님, 아가씨......

무슨 조선사회에서나 쓸 법한 호칭들이 난무한다. 

아무튼, 내겐 형님 시집살이가 더 혹독했다. 


"참, 어깨 트임 티 좋아하시네요". 

그 말하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 사람의 옷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지는 느낌이었다. 이상한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죽어도 지켜야 할 마지막 남은 보루가 있었다면 그건 시댁에서 아예 그 여자의 옷차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거였다. 


물론 지금도 난 여전히 언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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