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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녹진 11시간전

동호회배 대회에 출전한다는 건

연인끼리 같은 취미생활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 연인이 하고 있는 취미생활을 따라서 나도 한번 배워보겠다 선언하고 그 친구가 다니고 있는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랬더니 6개월 뒤, 동호회에서 주최하는 대회가 열린다며 그 친구는 다른 대회면 몰라도 김쌤이 주최하는 우리 동호회 대회는 출전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댄스스포츠의 'ㄷ'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래도 되나? 싶다가도 그래도 연인끼리 무언갈 함께 준비하고 해난다는 게 괜찮겠다 싶어서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첫 대회 준비를 시작했다. 댄스스포츠 쌩초보인 나는 초급반에, 그 친구는 중상급반에 있어서 같이 춤을 추는 취미생활을 하려면 내가 열심히 자라서 중상급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나는 대체 어느 세월에 초급반을 졸업할 수 있을까. 까마득한 미래를 그리는 와중에, 대회준비를 하면 같이 춤을 출 수 있겠다 싶어 나는 오히려 대회 출전이 좋았다.


문제는 나는 첫 대회고, 그 친구도 본인보다 댄스스포츠 후배와 대회에 나가는 적이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운동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댄스스포츠는 경력 2년은 넘어야 '이제 초보딱지는 뗐는가 보다' 하는 정도로 입문하기에도 쉽지 않은데, 입문해서도 어느 정도 춤춘다고 말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보통 댄스스포츠 대회 데뷔를 하게 되면 단종 종목으로 상급자와 초보자가 파트너를 맺어 대회에 입문하게 된다. 어떤 느낌이냐면 약간, 상급자 선장님이 초보자를 배에 태워주며 대회의 즐거움을 맛 보여준다. 달리기도 처음에 혼자 연습하다가 러닝 크루에 들어가서 다 같이 뛰면서 함께 뛰는 즐거움을 느끼고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흡사 대회 버프를 받아 신기록을 세우는 것처럼, 댄스스포츠 대회도 엄청난 고자극이라 한번 경험하고 나면 댄스 스포츠를 나도 모르게 즐거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대회장의 열기와 사람들의 환호성, 이때까지 연습했던 순간들의 결실을 맺은 그 경험은 꽤나 짜릿하다.


라틴 5종목, 모던 5종목 총 10종목의 댄스스포츠에서 대회에서는 하나의 종목인 단종, 두 가지 종목 2종, 세 가지 종목인 3종, 다섯 가지 종목인 5종에 출전할 수 있는데 나는 선택지가 없다. 첫 대회라서 단종에 출전하기도 하고, 배운 종목이 하나뿐이라 나갈 수 있는 종목도 유일했다. 동호회에서 8주간 종목 하나씩 배우는데 그 당시 가을학기를 첫 시작으로 겨울학기 중간에 대회 출전을 결심한 터라 매년 3/1에 열리는 동호회 대회를 나가려면 직전가을학기에 배운 종목 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8주 과정을  배운 룸바로 연인과 파트너로 단종 대회에 나가게 된 것까지는 좋은데, 파트너가 되면 그렇게 싸운다면서 커플끼리 대회 나가는 거 아니라더라?


하물며, 그 친구도 매번 상급자와 대회를 나가던 초보자 포지션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초보자를 끌어주는 상급자 포지션으로 바꾼 터라 사실상 초보자와 쌩초보가 나가는 거였다. 그 친구가 나름대로 준비한 대로 하긴 하는데 진도는 안 나가고 연습은 쉽지가 않고, 동호회에서 수업 말고 따로 창설된 대회준비반에서 아주 대차게 깨지고 나서 전격으로 루틴을 축소시키고 가볍게 생각했던 마음가짐을 된통 고쳐먹었다. 대회를 나가는 순간부터는 경쟁이고 순위가 매겨지는 게 당연한 와중에 입상은커녕 손발이 안 맞아서 준비한 루틴도 해내지 못하면 뭐 하러 대회를 나가나. 연인과의 즐거운 추억은커녕 잔뜩 상처만 남는 꼴이 될 것 같았다.



대회준비는 종목 루틴 말도고 복장과 헤어 메이크업도 필요했다. 와, 이건 진짜 생각하지 못한 복병이다. 여러 팀이 한 무대에 올라 심사위원의 시선에 들어 점수를 받아야 하기에 보다 눈에 띄고 화려해야 하는 대회 모습준비는 은근 손이 많이 갔다. 다행인 건, 대회 복장은 첫 대회다 보니 어떤 옷을 사야 할지도 모르고 처음부터 옷을 사는 게 쉽지 않아 선배가 후배에게 빌려주는 동호회 정이 있었다. 덕분에 평상시에는 상상도 못 할 예쁜 대회복을 입고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헤어&메이크업. 나는 그날 헤어젤과 고정 스프레이를 처음 써봤다. 머리에 그렇게나 많은 실삔이 박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이다. 메이크업은... 정말...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몰랐으면 좋겠더라. 내가 가진 몇 없는 화장품 목록에 얼굴에 바르는 테닝 파운데이션과 몸에 바르는 테닝 로션이 추가되었다. 댄스스포츠 대회를 나갔다고 말하면 친구들이 보여 달라고 하는데, 절대 영상을 보내 줄 수는 없고 직접 보여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회 모습은 평상시의 내가 아니다.


사실, 대회를 나갔는데 대회날 무대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 내가 뭘 했는지도 모르겠고 진짜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만 남아있다. 초보자와 쌩초보 둘이서 열심히 산으로 가고 있으면 상급자 선배들이 와서 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다. 정말, 얼마나 흘렀는지 시간도 모르고 연습홀에서 상급자 선배들이 리더는 리더를, 팔로워는 팔로워를 1:1로 마킹해서 우리가 준비한 루틴을 처음부터 끝까지 봐주고 어디가 문제인지 찾아주고 우리가 만든 루틴을 보완해서 보다 나은 방법을 손수 보여주었다. 그때 내가 다짐했던 건, 입상이고 뭐고 대회날 우리를 봐준 선배님들에게 "잘했다" 한마디를 듣는 걸 목표로 삼았다. 평일에 따로 연습실을 잡아 연인과 대회연습을 하면서, 정말 1:1 특훈 이후에 연습해야 하는 포인트들을 알고서 남은 진도에 막힘이 없어졌다. 대회를 나가면 실력이 확 는다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하다 보니 욕심이 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대회는 파트너랑 둘이서 으쌰으쌰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둘이서는 택도 없더라. 온 동호회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준비해 냈다.


아침부터 시작해서 대회 식순에 따라 단종, 2종, 3종, 5종 축하공연과 시상식이 끝나고 나니 저녁이 되어 있었다. 라틴 룸바 단종에 출전한 나는 순식간에 무대가 끝나고 대회를 구경하는데 이상하리 만큼 마음이 벅찼다. 댄스스포츠를 연인과 함께 하는 취미생활로 해보려고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 대회에 출전해 보고 무대를 하면서 사람들의 환호성도 받아보고 무대를 하고 있는 동호회 선배들과 동기들을 목이 터져라 응원해 보고 프로선수의 축하공연을 보면서 정말 멋있다고 느꼈다.


열띤 대회장에서 응원하다 말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제삼자가 되어 지금 이 순간의 대회장을 기억하자고. 무대를 구경하면서 응원을 하는 우리 동호회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위에 각자 자신의 동호회 출전자를 응원하는 여러 동호회들이 보였다. 그 자리에 있던 댄스스포츠를 좋아하는 동호회인들이 즐길 수 있는 잔칫날이 된 3/1 대회장을 보면서 대회를 주최한 김쌤을 떠올렸다.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프로 선수까지 하고 은퇴 후에도 이렇게나 다양하게 활동하며, 오래도록 댄스스포츠인들이 좋아하는 취미를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이렇게 한날에 모여 뽐내는 자리를 마련한다는게 여간 쉽지 않았을 텐데, 내가 생각하는 멋있는 사람 목록이 늘어간다.


그저 취미생활로 댄스스포츠를 해보려고 동호회에 들어왔다가 대회를 출전하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경험을 하고 내 주위에는 배우고 싶은 멋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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