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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녹진 Jun 28. 2024

성인 취미생활 동호회 희망 편

학생 때에도 안 해본 기숙사 생활을 성인이 되어서, 그것도 서울에 올라와 직장 기숙사에서 전국 지방에서 올라온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았다. 운이 좋았던 나는 기숙사 생활을 전부 내 동기들과 함께 했다. 같은 나이, 같은 연차로 불편할 것 없이 친구들과 사는 것처럼 직장 동료와 살았다. 아침 8시 기상 순서에 맞춰서 일어나 아침 먹을 사람을 체크하고서 씻을 사람은 욕실 불을 켜고, 아침밥을 준비할 사람은 부엌 가스레인지 앞에서 불을 켰다. 근무를 하다가 오늘 저녁은 뭘 먹을지, 집 앞에서 먹고 들어갈지, 간만에 배달을 시킬지. 그때는 그렇게 먹는 게 낙이었던 저 연차 때라, 신메뉴가 나왔다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뷔페를 거덜내고 그랬다.


같은 직장을 다니던 한 지붕 메이트들은 그 시절 추억으로 남았다. 전공을 그만둔 동기도 있고 서울을 떠난 동기도 있다. 이제는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대소사가 아니면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일 일이 없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가장 먼저 부모가 된 구미 룸메의 집에 춘천, 전주, 그리고 부산인 나까지. 이제는 옛날만큼 먹었다가는 소화불량이 오기 딱 좋은 30대가 되어, 아이와 함께 담소를 나눴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당연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틈틈이 핸드폰 시계를 봤다. 아아, 동호회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친구들에게 부끄러운 취미가 생겼다며,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된다고 비밀이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연인을 따라 댄스스포츠를 주말마다 배우고 있어서 조금 있다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생소한 취미라, 다들 신기해하기도 하며 부끄러워하는 내게 "우물쭈물 쭈뼛거리면 오히려 더 티 나니까 너도 뽐내면서 해봐~" 순간 상상해 봤다. 색색깔 화려한 댄스복 사이 위아래 검은색 운동복을 입은 뚝딱이인 내가 남들처럼 손끝을 초ㅑ ~



친구네 집에서 나 혼자 먼저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동호회를 가는데, '아... 진짜 가기 싫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수업 째고 친구들이랑 마저 당연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댄스스포츠 수업 홀을 찾아가면서 '이왕 시작한 거 진짜 한 바퀴만 해보자.' 다짐했다. 포기가 아니라 나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전 직장에서 만난 멋진 그 동료는, 운동을 시작하면 '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한다고 했다. 주짓수를 배우면서 아마추어배 대회에 입상하기, 폴댄스를 시작하면서 폴 프로필 만들기를 목표로 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는 사람을 처음 봤다. 그럼 나도. 나도 해보고 싶다. 라틴 5종, 모던 5종 총 10종목의 댄스스포츠 종목이 있는데, 초급반에서는 라틴 4종, 모던 4종 총 8종목을 배울 수가 있다. 일단 시작한 거 나도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고 나면 즐거움을 찾지 못하더라도 '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 초급반 4종 한 바퀴를 도는 동안 혹시 몰라. 나도 나만의 동호회의 즐거움을 찾을지도 모른다.


뚱한 기분으로 홀에 도착해 위아래 검은색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연습화로 갈아 신었다. 한 종목당 70분간의 수업을 하는데, 이상하다? 선생님의 수업에 집중하면서 스텝을 따라 밟고 루틴을 기억하면서 몸과 머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으니 내가 언제 뚱했었는지, 이유를 잊어버렸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딴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발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나에게 집중하느라 뚱한 기분으로 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잊었다. 나 지금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가을학기를 첫 수업으로 시작해, 겨울학기가 되어서야 조금씩 땀을 흘리게 됐다. 저번학기와 이번학기 사이 뭐가 달라진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봐야지.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할 수 있는 동작들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작새들 사이에 목각인형처럼 뚝딱거리는데, 선생님은 초급반에서는 감정 없는 로봇처럼 움직여야 한단다. 신입생이 처음 배우는 댄스스포츠에서 발만 안 틀리고 루틴을 완주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셨다. '예쁘게 잘'추는 건 초급반에서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토요일에 하는 동호회 수업 말고 수요일 자유연습하는 정모날, 연습홀에서 연습을 하다가 부르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언제 우리 끌려온 사람들끼리 한번 모일까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나와 같이 연인이 혹은 배우자가 댄스스포츠를 하고 있어서 생전 춤이라고는 생각도 안 하던 사람들이 파트너를 따라 댄스스포츠를 하게 된 사람이 무려 나를 빼고도 3명이 더 있었던 거다. 그때 알았다. 사람 많고 다양한 관계들이 있는 동호회에서 나 같은 사람도 있구나. '나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배우자를 따라서 2년 넘게 댄스스포츠를 하고 현재는 중급반 수업을 듣는 <마이옹>을 알게 되었다.


수요일 자유연습 정모가 끝난 날, 마이옹과 둘이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마이옹은 현 배우자를 따라 댄스스포츠에 발을 들였다. 전 연인일 때는 토요일마다 동호회활동을 보고만 있다가 부부의 의리로 취미를 함께 하기 위해 댄스스포츠 동호회에 방문했다. 토요일 동호회 수업이 아니라 수요정모에 온 것도 마이옹은 2년이 넘도록 동호회에서 수업만 듣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동호회배 대회를 나가기로 용기를 내면서 중급반의 마이옹과 초급반의 내가 수요일 정모날에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연인과 파트너로 같이 대회에 출전하기로 하고서 첫 대회 출전자들끼리, 끌려온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처음으로 동호회에서 나의 연인이 아닌 누군가가 궁금해졌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이 떨리는 마음을 마이옹과 저녁을 먹으면서 걱정은 반으로 나누고 설렘은 두배로 부풀었다. 댄스스포츠를 시작하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내가 댄스스포츠 동호회에 와서 나는 가짠데 진짜들 사이에서 잘못된 느낌을 받았다고 했을 때, 마이옹은 모두가 댄스스포츠를 좋아하고 즐기는데 본인은 그렇지 못해서 '내가 잘못된 건가?'하고 생각했단다.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 우리는 댄스스포츠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마음가짐으로도 동호회가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닭발집에서 제로콜라 한 캔을 걸치면서 그렇게 마음이 동했다. 댄스스포츠를 배우면서 몸을 움직이는 운동에 재미를 느껴가는 와중에, 동호회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하는 운동이라는 취미생활의 재미까지 붙었다. 연인을 따라 그저 데이트를 하러 동호회에 갔다가 아차하고 크게 데이고 나서야 드디어 나의 동호회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 보면 다행인지도? 끌려온 사람들 중에 비교적 빨리 재미를 찾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룸메이트들을 만나면 이야기를 한다. "저번에 한다던 댄스스포츠 아직 해?" 목소리를 낮추며 룸메이트 귓가에 은밀하게 속삭인다. "나 여전히 조금 부끄러운 취미생활이라고 말하면서도 아직 하고 있다?" 동호회마다 사람들이 어떤 점에 이끌려 모여드는지 궁금하다. 공통의 관심사를 함께해서인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인지. 아무렴. 뭐가 됐든 별 문제가 될 리 없다. 취미생활을 가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상의 즐거움인데, 그 취미생활 찾아가는 지금도 즐겁다고 말할 수 있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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