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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녹진 Jun 20. 2024

성인 취미생활 동호회 절망 편

연인끼리 같은 취미생활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 나도 용기를 내서 "나도 같이 댄스스포츠를 해볼래!" 말했는데, 웬걸? 연인의 반응이 뜨뜻미지근 하다못해 오히려 꺼려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그렇게 건강한 취미생활을 하면서, 보는 나까지도 몰입하고 땀 흘리는 즐거움이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왜 나랑은 같이 하려고 하지 않는 거야? 나에게 취미생활인 댄스스포츠 동호회 이야기를 하는 건 나랑도 같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나. 뭐야 그럼 그렇게 재미난다는 듯이 나를 꼬시지 말았어야지.


대학교 때 흔한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사람들이 모이면 다양한 사건사고가 생긴다는 걸 체감한 적 없어서 그런 건가. 처음에는 연인이 하는 걱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물며 그 당시에 연인은 동호회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마침 다음 학기가 마지막 운영진 임기이니까, 운영진이 끝나고 같이 춤만 즐기면 되는 동호회인으로 시작하자고 내게 취미생활 시작하는 시기를 잠깐만 참아달라고 했다. 동호회 운영진이 그렇게 힘든가? 주 1회 토요일 수업인데도 연인은 진도에 맞춰서 댄스스포츠 연습을 하고 거기에 운영진 일까지 하는 게 쉽지 않아 나까지 챙길 여유가 없단다. 그리고 자신의 사람들 속에 연인인 나를 어떻게 소개하며, 어떻게 동호회에 스며들게 도와야 할지 갈피를 정하지 못해 걱정을 했다.


막상 동호회에 들어갔는데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동호회에서 트러블이 생기면, 어쩌면 저쩌면 하는 일어날법한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아하더라. 막상 시작할 때가 되니까 나도 슬슬 걱정이 들었다.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아끼는 동호회 사람들과 나는 과연 무탈하게 친해질 수 있을까? 저곳에는 모두가 연인의 사람들인데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그래서 연인만큼이나 잔뜩 긴장한 채로, 신경을 곤두세우며 댄스스포츠 동호회에 방문했다.


운이 좋게도, 연인의 운영진 임기가 끝나고 내가 댄스스포츠 동호회에 들어갔을 때 댄스 스포츠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시기란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럼 나는 이제 연인과 같은 취미생활을 하면서 운동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하하 호호하는 해피엔딩을 생각했는데, 개뿔이었다. 댄스스포츠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교댄스가 아니었다. 댄스스포츠는 말 그대로 스포츠라서 경기를 위한 볼륨댄스였다. 여기서 나는 사교댄스고 볼륨댄스고 일단 댄스가 뭔지 1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무한도전에도 댄스스포츠가 나왔고 아육대에서도 댄스스포츠가 나왔다고 했는데, 그렇지 나도 보긴 봤다. 그저 예능으로만 봤다. 댄스스포츠는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으로 보고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동호회에는 댄스스포츠에 흥미가 있고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 온 집합체라, 예능이 아니라 댄스스포츠의 한 장면 장면을 이야기했다. 각자가 어느 순간에 댄스스포츠에 관심이 생겼는지에 대해 여러 작품들을 나열하는데, 어... 일단 어느 부분에서 멋짐을 찾고 감탄을 해야 하는 걸까.


모두가 열광하는 사이에 나 홀로 침묵했다. 나는 그냥 데이트하러 왔는데, 순간 내가 발을 잘못 들였다는 걸 직감했다. 아, 이거 쉽지가 않네. 진짜들 사이에서 가짜가 되었다. 하물며 나와 똑같이 초급반을 시작하는 동기가 있는데, 그 동기는 정말 댄스스포츠에 흥미를 가지고 배워보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 동호회를 찾아왔다. 정말 나랑 똑같은 걸 배우고 똑같이 시작했는데, 나와는 다르게 이게 재미있고 저게 재미있어서 그렇게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봤다. 땀 흘리면서 즐거워하고 보다 더 잘하기 위해 연습하고 성장하면서 댄스스포츠를 하는데, 나는 아니었거든. 땀 한 방울 나지 않았다. 발만 따라가기도 바쁘고 옆에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곁눈질로 컨닝하기 바빴다. 그렇게 화려한 공작새들 사이에 뚝딱이는 목각인형으로 초급수업을 들었다. 8주간의 수업을 끝으로 이때까지 배운 스탭과 루틴을 노래에 맞춰서 종강발표를 하는데, 선생님이 점수를 주는 상으로 혼자 하는 베이직 MVP와 커플로 추는 MVP. 수강생들이 뽑는 발전상까지. 나와 같이 시작한 초급반 동기가 수업에서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은 다 쓸어갔다. 그때, 그래서 가짜는 진짜가 될 수 없는가 보다 느꼈다.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가 없겠더라. 그리고 부러웠다. 잘하는 그 모습도, 사람들의 축하도, 8주간 열심히 노력한 열정도.


하물며 나는 연인이랑 춤추러 왔는데, 이미 1년 넘게 배운 연인은 초급반을 넘어 중상급반에 있었고 나는 초급반에 있었다. 같이 춤을 추려면 얼른 성장해서 중급반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동호회는 내게 며느리가 시댁에 가는 것처럼, 사위가 친정에 가는 것처럼 동호회 사람들이 어렵고 편할 수가 없었다. 동호회에 있는 모두가 이미 연인의 지인이었고 친하고 소중한 사람들이라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댄스스포츠도 사람들도 어려웠다. 수업 2주 차에는 신입생 환영회로 정말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처럼 뒤풀이 장소에서 인사도 하고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모르는 사람들을 대거 만나고서 정신이 쏙 빠졌다. 그리고 느꼈다. 앞으로 동호회 뒤풀이는 내 인생에 없다고. 내 선언을 들은 연인은 적지 않게 속상해하더라. 본인이 동호회를 차근차근 알아가면서 느꼈던 순간순간들을 나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내가 잘하질 못했으니. 당연했다. 나는 연인 따라간 건데, 연인은 동호회에서 연인인 티를 내고 싶지 않다고 했고 뒤풀이에서조차 같은 테이블은 곧 죽어도 피하며 되도록이면 대화를 삼갔다. 눈인사가 고작이었다.


인정해야 했다. 연인을 따라 댄스스포츠 동호회에 가면 데이트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이었다. 내 취미생활이고, 내 동호회 활동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더라. 진입장벽이 높은 댄스스포츠일지라도 내가 가겠다고 한 거니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야 했고 챙겨주기를 바라면 안 됐던 거다. 수요일, 연습홀에서 각자 연습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뭐를 연습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혼자 어버버 하고 있는 내가 서러워서 홀을 탈주해서 근처 공원에서 연습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시소를 탔다. 토요일, 평소도 아니고 8주간의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종강발표를 마쳤으니 수고했다며 다 같이 뒤풀이를 갔다가도 어색한 분위기가 어려워 한 시간도 안돼서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다 내가 스스로 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와, 진짜 내가 잘못 생각한 것에 대한 결과로 너무 각박하지 않나? 새로운 취미생활 댄스스포츠 동호회 즐기자고 이렇게나 슬퍼하고 각성해야 해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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