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녹진 Jul 12. 2024

취미생활 준비물 : 댄스복과 연습화

운동은 장비빨이라고들 하잖아. 어느 운동이든 시작하기 전에 준비물이 필요하다. 일단 나가서 뛰기만 해도 된다는 러닝도 막상 뛰다 보면 내 발에 맞는 러닝화와 스포츠웨어, 러닝벨트의 필요성을 몸소 느끼면서 하나 둘 스포츠용품들이 늘어난다. 봄, 가을 철을 맞아 마라톤 대회라도 개최가 되면 햇볕이 뜨거워 통기성 좋은 캡모자가 필요해지고 바람이 차가워지면 보온용 암워머를 찾게 되더라. 대회 시작 전 스포츠테이핑과 에너지젤로 대회 버프를 준비하는 게 당연해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준비물이 간소한 스포츠 운동으로 수영이 최고인 것 같다. 구립수영장에서 주 5일 수영을 하는데, 단벌 신사로 지금 몇 년째 버티고 있다. 수영을 다녀오면 곧장 옷걸이에 수영복과 수모, 물안경을 걸어 물이 잘 빠지는 곳에 수영가방과 함께 널어놓는다. 그리곤 다음날 출근길에 어제 널어놓은 용품들을 그대로 다시 수영가방에 싸서 출근가방과 함께 집을 나선다. 수영을 하면 할수록 수영장에 형형색색의 예쁜 수영복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는데, 아직까지는 수영복이 있는데 왜 다른 수영복이 필요한지를 몰라서 여전히 단벌신사로 수영장에 다닌다.


다들 취미생활 비용을 얼마 정도로 책정해 둘까? 내 취미생활이 장비빨이 필요한 운동이라고 한다면, 그중에서도 댄스스포츠는 정말이지 어엄청나다. 달리기는 집에 있는 아무 운동화라도 신고 나가서 뛰면 되는데 댄스스포츠는 댄스전용신발이 필요하다. 댄스스포츠는 모던 5종목과 라틴 5종목으로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모던과 라틴 춤 종목에 따라 모던화, 라틴화 준비해야 하는 신발도 다르다. 내가 연인을 따라서 댄스스포츠 동호회를 한다고 했을 때, 그 친구에게서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 바로 '연습화'다.


춤에 대해서 아는 게 1도 없는 뚝딱이는 모던화고 라틴화고 뭐가 뭔지 몰랐다. 어떤 디자인이 예쁜지 어떤 재질과 쉐입이 발이 편한 지도 아는 게 없으니, 댄스스포츠 입문하는 초보자니까 연습화부터 시작하자고 하고 모던화, 라틴화, 연습화 중에서 검정가죽과 에어망사로 된 통기성이 좋은 연습화 디자인을 골랐다. 여기서 나오는 동호회의 장점! 동호회에서 댄스용품점 탑드림 매장에 주문을 넣으면 2만원 할인이 된다. 주문한 신발이 만들어질 동안 동호회에서 빌려주는 대여화를 신으면서 내 신발은 언제 만들어져서 오나 두근거리는 기분으로 택배배송을 기다렸다. 내게도 첫 장비가 생겼다.


필수품인 댄스전용 신발이 생겼으니, 다음은 복장인데 뭐 딱히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댄스스포츠에 입문하는 초급반의 초보자의 첫 수업을 상상해 보면, 어설프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않을까? 그런 모습에는 적당한 운동복이 자연스럽지, 반짝반짝하고 세상 화려한 댄스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 편히 집에 있는 검은색 반팔티에 검은색 조커팬츠를 운동복 삼아 챙겨 동호회에 갔다. 내가 다니는 댄스스포츠 동호회에는 복장에 대해서 파로 갈리는데, 검은 옷 입기 파와 검은 옷 안 입기 파가 있다. 8주간 토요일 수업마다 나는 검은색 인간이 된다.


언제나 검은색 인간으로 연습복을 입으면 좋겠는데, 8주간의 수업 과정을 완주하고 나면 그동안 배운 루틴을 발표하는 종강발표회가 있다. 나는 당연하게 검은색 반팔티에 검은색 조거팬츠를 들고 동호회에 갔는데, 8주 차 초급 중상급 수업이 끝나고 종강발표가 시작되기 전 동호회 선배들에게 착착 조립되었다. 알고 보니까, 종강발표회라고 다들 화려하게 꾸미는데 거기서 나 혼자 검은색으로 있다가 종강발표회 그 속에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낄까 봐서 일부러 챙겨주던 거였다. 부담 없이 입을만한 댄스복과 소품, 악세사리들을 빌려주었다. 첫 종강발표하는 내 모습은 누가 볼까 부끄럽지만, 종강이라고 나름 꾸민다고 동호회사람들이 만들어준 모습은 나도 모르게 광대가 올라간다.


동호회 수업과 종강발표에서는 연습화로 차근차근히 댄스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는데, 3/1 개최되는 동호회 대회에 라틴종목의 룸바 단종을 출전하기로 하면서 이제는 연습화가 아니라 라틴화가 필요해졌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굽이 높은 신발이 댄스스포츠 연습화인데, 굽이 넓고 낮은 연습화에서 굽이 좁고 높은 라틴화라는 다음 단계가 생겼다. 대회에 출전하기로하고 참가 신청서를 내고 나니 동호회 선배분이 내게 발 사이즈를 물어보셨다. 종강발표에서도 연습화를 신는 걸 보고 집에 남는 라틴화를 주려고 했는데 자꾸만 까먹었었다며, 대회 전에 신어보라며 사이즈가 다른 라틴화 2개를 선물로 주셨다. 왜 사이즈가 다른 신발일까? 의아해했는데, 신기한 게 정말 사이즈가 다른 2개의 라틴화가 필요하더라. 굽 있는 신발이 처음이다 보니 처음에는 사이즈가 큰 라틴화로 굽 있는 신발에 올라서서 걷는 연습부터 했다. 그리고 조금 적응이 됐다 싶을 그때부터는 딱 맞는 라틴화로 대회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 동호회에 와서 첫 수강등록을 한 가을학기 룸바에서 올해 여름학기 룸바 종목으로 돌아오기까지, 초급반에서 들을 수 있는 4가지 종목을 모두 수강하고 초급반 한 바퀴를 돌고서 내게는 3번째 라틴화가 생겼다. 이제는 내 발사이즈를 알아서 걱정 없이 새 신발 주문을 넣었다. 새것은 정말 최고더라. 새 신발을 신은 그 순간부터 내 발에 신발이 길들여지는데, 정말 까지는 곳 하나 없이 부드럽게 착 하고 부드럽게 감기는 느낌이었다. 물욕이 생기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 발에 딱 맞는 새 신발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더라.


올해 5월, 동호회에서는 댄스복 계모임 3기가 시작됐다. 한두 푼 하는 게 아니다 보니 댄스복을 구매하고자 곗돈을 모으는 동호회 내부 계모임으로 고민고민을 하다가 나도 참가신청을 했다. 태초에 단벌신사인 나는 웬만하면 연습복이 아닌 대회복을 살 것 같지는 않은데 계속해서 대회복을 빌리는 것보다 내 옷 하나는 있어야겠다 생각하기도 했고, 내가 뭘 알아야 사지. 댄스복이나 대회복에서도 여전히 까막눈이다. 계모임을 하면서 계원들과 친해지기도 하고 댄스복 정보도 공유할 겸 계모임에 들었다. 이번주 토요일 수업 전, 계모임의 1차 계비 수여식이 있을 예정인데, 계모임 운영규칙안 중에는 (9) 계금을 받은 사람은 사용처를 계원에게 공유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어야 함. 조항이 있다. 1차 계비 수여식에서 계비를 받을 계원들은 과연 어떤 기깔나는 쇼핑을 했을지 궁금도하고 기대도 된다. 사실 나의 계비 수령일은 남았지만, 미래에 받을 걸 알기에 장일남컬렉션 세일기간에 댄스복 바지를 구매했다. 확실히 연습복으로 입던 운동복과는 달라서 괜히 아껴입고 싶더라.


새 옷을 산 첫날이 마침 수요일마다 자유연습이 있는 정모날이라 쇼핑가방을 들고 연습홀에 갔다. 그래도 새로 산 댄스복이라고 종강발표 때 아껴 입어야지 했는데, 같이 쇼핑을 한 연인은 사놓고 왜 입질 않냐며 첫 개시는 해야 하지 않겠냐고 입어보라고 해서 아무 날도 아닌 수요정모날 새로 산 바지를 입고 연습을 했다. 막상 새 옷을 입고 연습을 하는데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면서도 느낌 탓인지 모르겠는데 새 옷을 입으니 춤을 좀 더 잘 추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물욕이 슬금슬금 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 단벌신사가 맞긴 하겠지? 하 정말, 운동은 장비빨이 맞는가 보다.


 

이전 04화 동호회배 대회에 출전한다는 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