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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Sep 30. 2022

싫어, 연필 안 잡아! 그럼 대필하면 되지!

 예전에 만났던 한 학부모님의 하소연이 생각납니다.

 “일곱 살에 겨우 한글을 뗐는데, 여덟 살에 바로 일기를 쓰라니요. 어떻게 해요?”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일기 숙제를 만나게 됩니다. 아이가 스스로 쓰면 좋겠지만 처음 해보는 일을 능숙히 한다는 건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옆에 붙어 앉아 지도를 해야죠. 그래서 일기 쓰기는 아이 숙제지만, 부모 숙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시키는 대로 술술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아이도 손에 꼽힙니다.

 아이와 일기 쓰기를 할 때는 일단 참을 인(忍) 자를 세 번쯤 그려야 합니다. 아이는 일기장을 펼쳐놓고 결코 바로 일기를 쓰는 법이 없습니다. 손톱 정리를 하거나, 책상 위에 물건들을 만지작거립니다. 또는 이 연필은 잡기가 불편하고, 다른 연필을 꺼내 주면 연필은 괜찮은데 잡고 있는 팔이 아프고, 팔을 주물러주면 눈이 아프고. 온갖 핑곗거리를 늘어놓지요. 그런 상황을 슬슬 구슬려가며 일기 쓰기의 글감을 찾아 ‘어떤 이야기를 쓸까?’ 하며 대화를 시도해 보는 건 정말 뼈에 사리가 나올 정도로 힘든 일입니다. 그나마 자기들 기분 좋을 때는 이런저런 얘기도 해주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DON’T TOUCH ME 모드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뭘 쓸 건지 안 가르쳐주고, 혹시라도 끼어들면 세상 귀찮아합니다. 그러다 결국 ‘모르겠다. 네 맘대로 해라’ 두 손 두 발 다 들고 부모님이 포기해버리기도 하시죠.

 제가 만난 용석(가명)이 얘기를 안 꺼낼 수가 없네요. 용석이는 당시 1학년이었고 아주 장난기가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성격은 대범하지 않아서 엄마 뒤에 숨어 저를 관찰했지요. 반짝반짝 눈이 빛나고 귀엽게 생긴 친구였지만 수업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용석이는 저와 마주 앉아 있는 것을 불편해하며 방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같이 수업을 받기로 한 누나 먼저 하라며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엄마하고 얘기를 나누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듣고 싶어서 엄마 등에 숨어 엿들었습니다. 궁금한 것도 많고, 관심도 많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겁이 나는 그 어린 마음이 행동으로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누나가 먼저 수업을 받고, 그 모습을 지켜본 후 용석이가 제 앞에 앉았습니다. 작은 앉은뱅이책상을 마주하고 저는 어떤 이야기를 쓸 건지 용석이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용석이는 미술학원 얘기를 꺼냈습니다. 얼마 전 미술학원을 그만뒀는데 그 이유가 ‘귀찮아서’라고 했습니다. 나는 무엇이 귀찮냐고 다시 물었지요.

 “그림을 그리는 게 귀찮아? 아니면 선생님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하는 게 귀찮아?”

 “가는 거요.”

 용석이는 집에 있다가 학원으로 가야 하는 그 행위, 그 자체가 귀찮은 것이었습니다. 정작 학원에서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았다고 말하더군요. 거기다 학원에 가면 옛날에 같은 유치원에 다녔던 친구지만, 지금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은 두 친구를 만날 수 있어 좋다고 말했습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용석이 어머니는 깜짝 놀라 하셨습니다. 학원을 그만두겠다는 이유가 단순히 가는 행위 자체가 싫어서라는 걸 전혀 몰랐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이것이야말로 좋은 이야깃거리라 생각했습니다. 용석이만의 고유한 생각이 담긴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숨어있던 복병은 다음에 나타났습니다. 용석이가 연필을 잡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안 쓸래요.”

 쓸 거리도 다 정했고, 그동안 대화를 하며 어색함도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용석이는 이번엔 연필을 잡지 않겠다며 버텼습니다.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글 쓰는 게 싫은 거야, 연필 잡는 게 싫은 거야?”

 “연필 잡는 거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럼 선생님이 대신 연필을 잡고 쓸게. 용석이는 부르기만 해.”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렇게 해도 돼.”

 저는 아이를 안심시켰습니다. 사실 용석이가 왜 연필을 안 잡겠다고 한 건지 지금도 모릅니다. 늦은 시간이라 졸려 그랬을 수도 있고, 여전히 낯설고 불편해 그랬을 수도 있고, 학원에 가기 싫은 것처럼 단순히 팔을 움직이는 그 행위가 귀찮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그 마음이야 모르지만 저는 ‘대필’이라는 간단한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쓰면 좋겠어? 나는 미술학원을 끊었다고 쓸까? 아니면 다니지 않는다고 쓸까? 그만뒀다고 쓸까?”      

 그러자 용석이는 ‘귀찮아서 끊었다’라고 써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 그대로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왜냐하면?’이라고 접속사를 불러주었죠. 그러자 ‘집에 있고 싶은 데 가기 귀찮아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림 그리는 건 재밌었지?”     

 하니까 맞다고 해서 그다음 문장도 썼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일기 한 편을 완성했습니다. 아이는 신기한지 노트를 계속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글로 표현되는 게 신기한 듯 보였습니다. 용석이가 신기해서 읽고, 읽고 또 읽었던 자신의 일기. 비록 대필 형식을 취했지만 아이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목 : 미술학원

나는 미술학원을 귀찮아서 끊었다. 왜냐하면 집에 있고 싶은 데 가기 귀찮았다. 그런데 사실 그림 그리는 건 재미있었다. 유치원 때 친구가 있어서 좋았다. 둘 다 친한 친구였으니까. 한 명은 가까이 사는데 다른 한 명은 멀리 산다. 미술학원 갈 때는 둘 다 본다. 지금은 못 보니까 보고 싶다. 다시 만나면 놀고 싶다.


 대필에 대해 부정적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을 어른이 대신 해준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이를 대할 때 꼭 원리, 원칙만 내세울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아이가 평생 버르장머리 없이 클 것 같고, 태만할 것 같고, 의존적으로 살아갈 것 같지만 아이는 매일매일 달라집니다. 오늘은 이랬지만 내일은 저럴 수 있는 게 아이입니다. 기분대로, 머리가 커가는 대로, 힘이 달라지는 대로 아이는 어른과 달리 매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약 연필 잡는 것 하나로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면 대필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방식으로 굳어지지 않게 어른이 요령을 피워야지요. 아이와 다르게 어른은 '요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섯 번 중 한 번만 대필을 해준다든지, 한 달에 한 번 아무 때나 대필 이용권을 쓸 수 있게 한다든지, 방학만 대필하고 앞으로는 대필이 없다고 한다든지. 어른은 얼마든지 아이와 협상할 수 있고 요령껏 다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챙기세요. 글밥을 늘리든지, 사고력을 깊이 한다든지.

 저는 그날 용석이에게 본인의 생각을 온전하게 담으면 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얼마나 풍성해질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용석아, 봐봐. 네 생각을 적으니까 글이 훨씬 길어지지? 일기 쓸 때 있었던 일만 적지 말고 네 생각을 적어봐. 네 의견이나 느낌을 쓰면 훨씬 재밌어.”     

 용석이 어머니도 칭찬으로 용석이를 독려해주시더군요.

 “용석아! 너 평소에 일기 두 줄 쓰기도 힘들어했는데, 오늘은 이게 몇 줄이야?”

 아이가 글쓰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가끔은 어른들도 원리와 원칙에서 살짝 벗어나, 잔꾀와 융통성을 발휘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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