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콩 Sep 30. 2022

핸드폰 가지고 싶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글이 내 삶의 숨구멍이 되어줬던 경험이 혹시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쓰는 글뿐 아니라 읽는 글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마음이 많이 힘들고 지쳤던 그 시절에 저는 책을 많이 봤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스토리를 따라가는 소설책도 좋았고, 내 감정과 생각을 돌아보게 만드는 심리책도 좋았습니다. 표지가 예뻐서 읽은 책도 있었고, 제목이 좋아서 펼쳐본 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속상함을 배설하듯 저는 글을 썼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에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이 철저하게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글도 썼고, 누군가를 지칭하며 욕을 적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때론 나 스스로 나를 위로하며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너의 수고로움과 힘듦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다독여주었습니다.

 글은 참 이상한 힘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듭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글입니다. 아이들 글쓰기 코칭을 가서 그 아이의 일기장이나 독서록을 들여다보면 어렴풋이 그 아이의 특성을 알게 됩니다. 내 앞에서 과묵하게 입을 다물고 있지만 원래는 호기심이 많고 욕망이 큰 아이이기도 하고, 엉덩이를 안 붙이고 집중을 못 해서 수업을 힘들게 하지만 사실은 관심과 인정을 바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보이는 모습 그대로일 때가 많아요. 아이는 어른과 달라서 곧이곧대로 삽니다. 꼬여있거나 가식으로 살지 않습니다. 그 순수함이 좋고 부러울 때가 많아요.

 3학년 성현(가명)이는 점잖은 아이였습니다.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성현이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갖고 싶지 않아?”

라고 물었을 때

 “아니요. 전 괜찮아요.”

라고 대답하는 아이였습니다. 표정을 보니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더군요. 저는 그런 아이의 태도가 신기했습니다. 제 아들만 해도 ‘엄마. 00이 집에서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해도 된대~ 하루 30분씩 한대~’ 라며 ‘엄마 나 핸드폰 갖고 싶어, 나 게임하고 싶어’라는 소리를 돌려 말하는데, 성현이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우리 반에 누구는 어떤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정보를 주든지, ‘누구는 위험하게 걸어가면서 핸드폰을 해요’라면서 흉을 보든지 어떤 형태로든 얘기를 꺼낼 법도 한데, 무 자르듯 딱 자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부분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됐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건드려보고 싶더군요.

 하지만 이것은 집안의 금기를 깨는 일이었습니다. 각 가정마다 휴대전화, 게임, 유튜브 등 엄격하게 제한하는 물건이나 행동이 있기 마련입니다. 성현이네 가정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금지하고 있었는데 괜히 얘기를 꺼내 아이를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더군요. 저는 성현이와 대화를 마치고 글쓰기에 들어가기 전에 성현이 어머니를 다시 불렀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휴대전화를 소재로 글을 쓰고 싶은데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될까 봐 염려스럽다고요. 다행히 성현이 어머니는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아이의 진짜 생각도 궁금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이날의 글쓰기 소재는 ‘핸드폰’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핸드폰을 정말 갖고 싶지 않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아이가 머뭇거리더니 갖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대로 쓰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네?”라고 하더군요.

 “응! 그냥 써보는 거야. 실제 핸드폰이 생기든 안 생기든 상관없이, 핸드폰을 해도 된다 안 된다 상관없이, 그냥 네 마음을 적어보는 거야.”

 성현이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지 당황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른인 제가 쓰라고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써보고 싶었던 건지, 손에 힘을 꽉 주고 쓰더군요.

 ‘갖고 싶다. 그리고 해보고 싶다.’

 저는 다음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핸드폰 쓰는 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좋게 사용하면 좋고, 나쁘게 사용하면 안 좋아요.”     

 아이의 대답이 두루뭉술했습니다. 아직까지 금지 물건인 핸드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보였습니다. 저는 일부러 핸드폰이 있는 환경을 자꾸 연상시켜 주었습니다. ‘어른들도 있잖아’. ‘친구들은 핸드폰으로 뭘 해?’ ‘네 손에 있으면 어떻게 쓸 건데’ 등등. 아이는 마치 상상도 해보지 않은 것처럼 대답을 잘하지 못하더군요. 하지만 핸드폰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줄줄줄 말했습니다. 핸드폰의 긍정성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부정성에 대해서는 평소 생각을 많이 해봤던 것 같았습니다. 재밌는 질문도 해봤습니다.   

 “만약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이번 크리스마스에 핸드폰을 선물하시면 어떻게 할 거야?”

 “엄마 줄 거예요.”

 “그럼 넌 언제 써?”

 “나중에요.”     

 그래서 언제가 핸드폰 쓰기에 적기냐고 물으니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보다 어릴 때는 스스로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저마다의 논리가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직 그런 생각을 못 할 거라 생각해서 먼저 규칙을 정하고 통제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먼저 어떤 규칙이 필요한지, 어떤 통제가 필요한지 물으면 꽤 합당한 기준으로 대답을 합니다. 의외로 무모하거나 억지 부리지 않아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성현이에게 초등학교 6학년 또는 중학교 1학년 시기에 핸드폰이 생기면 뭘 하고 싶은지 적어보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금방 적지 못 하고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연필을 꼭 쥐고 가만히 노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적기 시작하더군요. 성현이의 글을 이곳에 옮겨보겠습니다.


                                                      제목 : 핸드폰     

갖고 싶다. 그리고 해보고 싶다.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좋은 데 사용하면 좋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도록 사용하면 안 좋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것이 좋은 것. 핸드폰의 좋은 점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기분을 풀 수 있다. 너무 오래 보면 중독되고 눈도 안 좋아진다. 공부는 안 하고 핸드폰만 하게 되고 핸드폰 하느라 약속을 못 지킬 수 있다. 다른 사람과 통신하기 위해서 빠르게 약속을 잡을 수도 있고 빠르게 정보를 알 수 있다. 어른들은 급할 때 쓰거나 뉴스, 웹툰 볼 때 사용한다. 핸드폰은 초6 ~ 중1 때 같는 게(갖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초6이 돼기(되기) 전에는 게임이나 다른 걸 호기심 때문에 하기 때문이다 초6 ~ 중1 정도 돼면(되면) 자기가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핸드폰을 가진다면 영상, 문자 같은 걸 하거나 보고 싶다.


    글을 완성하고 성현이는 노트를 품에 안았습니다. 엄마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글은 본인이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보통의 경우 결과물을 제가 가지고 가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사진만 찍고 노트를 그대로 성현이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내가 핸드폰을 가진다면 영상, 문자 같은 걸 하거나 보고 싶다.’는 마지막 문장을 보고 저는 드디어 성현이가 속마음을 보였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마트 폰의 무궁무진한 위력을 모르기 때문에 나온 답이겠지만 친구들과 문자 보내고 영상 보는 것을 하고 싶다니, 그 대답이 참 소박하고 순수했습니다.

 저는 성현이에게도, 그리고 성현이 어머니에게도 글을 통해 잠깐씩 일탈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 보았습니다. 행동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말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끔 뭔가 허락되지 않은 생각이나 의견을 하얀 공간 위에 적어보는 것. 그 행동만으로도 해방감이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성현이는 반듯한 선비나 착한 모범생처럼 부모의 기대에 부합하고 있었지만, 사실 본인만의 논리나 주장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다만 부모와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싶어서 또는 외부의 기대감에 부흥하고 싶어서, 본인의 생각이나 의견을 잘 꺼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이 착하고 배려심이 깊어서 그런 것이지요.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쁩니까.

 다만 그러다 지치고 힘든 순간도 있을 거예요. 그럴 때 살며시 비밀 일기장을 꺼내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적어본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사춘기에도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이전 12화 싫어, 연필 안 잡아! 그럼 대필하면 되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