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콩 Sep 30. 2022

아이가 생각하는 이별은 어른과 다르더군요

 일기 코칭으로 만난 아이 중에 평소 시를 쓴다는 아이는 혜영(가명)이가 유일했습니다. 나이는 겨우 아홉 살. 아마 교과과정에 동시가 처음 나오는 2학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를 처음 접해봤다고 혜영이처럼 주야장천 써대는 아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혜영이에게 시의 매력을 물었습니다.

 “시는 재밌고, 자유로워요. 짧으니까 쓰고 다른 거 또 쓸 수 있어요.”

 얼마나 좋으면 쓰고 다른 것을 또 쓸까요? 짧으니까 많이 쓸 수 있다는 말에 웃음도 나고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혜영이의 시는 정말 자유로웠습니다. 그리고 그림이 그려지는 듯했지요. 선물 받은 두 편의 시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삼총사의 밤>

삼총사는 오늘도 자기 싫어합니다.
엄마는 어찌나
마사지하라 하고
우리 동생은 장난만 치고
나는 또 그렇게 시를 쓰고
언니는 진지하게 엄마
마사지를 합니다
                                        <숨은 그림>

나무 그림 뒤에
뱀이 있네
풀숲 뒤에
토끼, 곰 있고
나무 그림 뒤에 또
코끼리 있고
나뭇가지에는
앵무새 있고


 제목도 탁월한 <삼총사의 밤>에서 ‘또 그렇게 시를 쓰고’라는 표현이 압권입니다. 그 표현이 없었다면 얼마나 밋밋했을까요. <숨은 그림>이라는 시를 읽을 때는 연필을 들고 숨겨진 그림에 동그라미라도 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서 연신 감탄하자 혜영이가 제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예쁘고 소중한 시 두 편을 말이지요.

 이 멋진 혜영이와 어떤 글을 써볼까. 역시 시를 쓰는 게 좋을까, 아니면 새로운 글쓰기를 해볼까. 저는 혜영이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시가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혜영이의 언니와 글쓰기 수업을 먼저 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혜영이네 가족의 아픈 이별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지요. 혜영이 가족은 첫 애완동물로 앵무새를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앵무새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고 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앵무새. 그 일이 벌써 몇 년 전 일인데도 온 가족이 입에 올리지 못할 정도로 슬퍼하고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고양이도 키워봤는데 혜영이와 동생에게 고양이 알레르기가 생기는 바람에 다른 집에 입양 보냈다고 하더군요. 아픔을 이겨보려 애썼지만 혜영이네 가족은 두 번의 큰 이별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홉 살 혜영이는 이 이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 아이에게 이별이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습니다.

 “고양이가 다른 집에 갈 때는 너무 슬퍼서 학교도 못 갔어요. 그리고 고양이가 입양된 집을 지날 때는 가만히 올려다봐요.”

 아마도 가까운 곳으로 입양을 보낸 모양이었습니다.

 “그 집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창문에 캣타워가 있는데 그게 보여요. 우리 아빠가 만들어준 거거든요.”

 “다시 만나면 어떨까? 집에 데려오고 싶을까?”

 “아니요. 반가울 거예요.”     

 아이의 대답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반갑다니. 어른들은 이별 후 찾아오는 그리움에 압도되어 다시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이별한 그 사람에게 매달리기도 하고, 이별이 너무 슬퍼서 상대를 미워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만나지 말걸’ 후회하기도 하는데. 반갑다니.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어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그 건강한 대답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반갑고 또 어때?”

 “잘살고 있을 거야. 앞으로도 잘살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먹을 것도 가끔 보내줘요.”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이별은 아팠지만 그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건강했습니다. 혜영이의 시각으로 본 이별은 어떤 걸까요?             

                                          < 이별 >

이별이란 같이 있고 싶은데 떠나는 것
그래서 이별은 슬픈 마음을 주는 것
이별은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것
이별 후에는 잘 살겠지 생각하는 것
다시 만나면 반갑다는 것


 아이의 솔직한 마음이 담긴 이 시는 결국 혜영이 어머니를 울리고 말았습니다. 몇 년 전 어쩔 수 없이 가슴에 묻어야 했던 앵무새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보내야 했던 고양이에 대한 미안함과 슬픔이 그동안 어머니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대화를 나눠보니 오히려 아이들은 마음으로 잘 애도하고 떠나보냈는데 어머니는 그러지 못하신 것 같더군요. 소중한 생명과의 이별은 언제나 슬픈 것입니다. 그것이 동물이라 하여, 식물이라 하여 사람보다 덜하지는 않겠지요.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참으시려 해도 눈물을 멈추시지 못할 만큼 어머니에게는 큰 아픔인 것 같았습니다

 “더울 때, 가족들이 밥을 먹고 있으면 지나가다 선풍기 바람을 식탁 쪽으로 돌리는 아이예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머니는 혜영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배려가 깊은 아이라고 하시더군요. 아홉 살에 벌써 그런 생각과 마음을 먹을 수 있다니 값비싼 보석을 본 것처럼 아이가 귀하게 보였습니다. 느낀 대로 솔직하게 쓸 수 있고, 본 것은 그 이면까지 헤아려 생각할 수 있으니까 혜영이는 작가로서 손색없는 재능을 가졌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까워서 계속 글을 쓰는 사람으로 커가라고 얘기해줬습니다. 혜영이에게도, 어머니에게도요. <이별>이라는 시는 혜영이 어머니에게로 돌아갔습니다. 혜영이가 선물로 드렸거든요. 딸이 건네는 위로의 선물로 어머니의 상처가 깨끗이 치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로 하는 위로는 말보다 강하니까요.

이전 13화 핸드폰 가지고 싶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