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커피 대신 뽀로로 음료수병을 든다.

by 노콩

내가 일할 당시의 이야기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다.) 그 당시 나는 주말부부를 하고 있어서 독박으로 연년생 남아 둘을 키우며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체력도 정신도 겨우 간당간당하게 채우며 살아가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나는 아이들을 직장 어린이집에 맡기고 샛길로 출근하던 길이었다. 샛길 옆에는 주차장이 있었는데, 마침 빨간 자동차 한 대가 호기롭게 주차되더니 운전석에서 여직원이 내렸다. 젊은 그 여직원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평소에도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눈에 띄었는데 그날은 타이트한 스커트가 더욱 멋지고 예뻐 보였다. 한 손에는 우아하게 테이크 아웃 커피도 들고 있었다. 나는 그때 차마 인사를 하지 못 했다. 그 여직원이 앞서 걷고 나는 조금 거리를 둔 채 따라갔다.


그날 내 손에 들려있던 것은 뽀로로 음료수병이었다. 그 당시 우리 아이들은 차 안에서 빵이나 주먹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늘 시간에 쫓겼기 때문에 나는 한 번도 아이들에게 아침밥다운 아침을 차려주지 못 했다. 그나마 등원하면 어린이집에서 죽을 주니까 그걸 믿고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날은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는 둘째를 뽀로로 음료수로 유인해 차에 태웠던 날이다. 그리고 쓰레기통을 찾지 못해 사무실까지 그걸 들고 가던 참이었고.


그때의 기분은, 사실 그렇게 느낄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마치 루저가 된 기분이었다. 나도 저 여직원처럼 아이가 없다면 저렇게 멋지게 차려입고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출근할 수 있었을까? 아니 결혼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 아침 시간을 온전히 날 위해 쓰면서 조금은 여유롭게 출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단 사무실 출근 도장부터 찍고, 화장실로 가 메이크업을 하며 나는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엄마의 삶을 살면서 힘들다고 느끼는 여러 이유들 중에 하나가 ‘대우 받지 못 한다’는 느낌이다. 뭔가 나는 허겁지겁 정신없이 살고 있는데 그런 삶을 이해받거나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뭔가 무능력하고, 세상을 크게 보지 못 하고, 심지어 이해력까지 떨어지는 어떤 사람으로 취급받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애나 키우는 엄마가 뭘 알아?” 하는 눈빛, “유모차 부대가 알면 세상 사람 다 아는 것.”이라는 말들. 사회구성원을 굳이 계급으로 나눈다면 아기 엄마의 계급은 몇 계단이나 올라갈 수 있을까?


사본 -child-5033381_1920.jpg 출처:픽사베이



엄마들이 허겁지겁 정신없이 살고 있을 때, ‘정말 그럴 수밖에 없겠네’ 하고 이해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기를 ‘인간’으로 키워내고 있는 그 과정이 정말 값진 일이라고 평가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육아에 집중하면 늘어난 옷이나 얼굴에 가득한 기미 따위는 생각할 여유가 없어진다는 것을 세상 사람 모두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엄마들의 삶이 지금만큼 고단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텐데.


사실 앞서 말한 여직원은 결혼은 했으나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 남편과 양가 부모님께도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남편은 유학을 갈 예정이고, 본인은 하고 싶은 공부가 더 있다고 했다. 속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 저변에는 초라한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일단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하면, 머리는 질끈 묶여지고, 말라비틀어진 밥풀 한두 개는 옷에 묻히게 되니까. 예쁜 원피스는 잠시 옷장에 넣어두고 세상 편한 바지만을 골라 입게 되니까. 하이힐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신발장엔 신을 만한 신발이 하나도 없게 되니까. 똑똑한 그 여직원은 이 모든 사실을 미리 알고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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