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이가 학원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여태 재밌다고 잘 다니다가 갑자기 그러니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아이의 감정에 귀 기울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이가 왜 가기 싫다고 하는 건지 알고 싶었다.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수업이 어려운 건지, 놀고 싶은 건지...... 그러나 아이는 명확히 얘기해 주지 않았다. 그냥 싫다고 그 순간엔 생떼를 부렸다. 아무튼 그날은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학원에 들여보내고 마음이 심란했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사실 학원을 열심히 다녀야 하는 나이도 아니었다. 싫다는 아이를 공부하라고 등 떠민 것이 못내 찝찝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나의 결론은 역시 학원을 그대로 보내는 것이었다. 사실 아이는 그 전 피아노 학원도, 방과 후 수업도 가기 싫다며 끊어버린 전적이 있었다. 이번만큼은 반복되는 그 패턴을 바꾸고 싶었다. 뭐든지 하기 싫다고 쉽게 포기하고 회피하던 그 선택을 한번 쯤은 멈춰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밤 아이와 나란히 누워 학원을 어떻게 할 건지 얘기를 나누었다. 밤이 되니 아이가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아이는 숙제가 많고, 학원을 가기 전 양치질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 일들이 귀찮고, 왜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의 질문에 하나 하나 답했다. ‘숙제가 많은 것은 인정한다. 그 부분은 선생님과 조율해 보겠다. 앞으로 그날의 스케줄에 따라 능동적으로 과제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 , ‘학원을 가기 전 준비과정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학원이 아닌 학교를 갈 때도 마찬가지고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마찬가지다. 해야 할 것은 하고 넘어가자.’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질문. 학원을 왜 다녀야 하는가. ‘학원을 다녀야하는 이유는 발전에 있다. 네가 더 발전하기 위해 다니는 것이다. 지식적인 부분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의 성실함과 꾸준함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다. 그리고 발전한 스스로를 느낄 때 뿌듯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날 밤 아이와 ‘극복’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싫고 어려운 일을 포기하고 회피하던 것 말고, 이제는 ‘극복’이라는 선택도 해보자. 극복을 통해 얻는 성취감도 있을 것이다. 학원에 가기 싫은 마음과 싸우고, 놀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한번 쯤은 하기 싫은 것을 끝까지 해냈을 때 뭐가 달라지는지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아이도 다행히 내 얘기에 동의했고, 우리는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기 전까지 이 학원을 계속 가보기로 했다.
나는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아이의 인생 선배로서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살아본 입장에서 뭘 하고 뭘 안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는지 아이에게 알려주는 내 모습이 진짜 ‘선배’ 같았다.
워킹맘은 말할 것도 없고, 비록 사회에 나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는 전업맘도 마찬가지다. 엄마들은 적어도 집에서 노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추석을 앞두고 어떤 전업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좀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매번 명절이 되면 시어머니가 워킹맘 며느리에게 고생한다고 말하고, 자신은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해 주방으로 가게 된다고. 친척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어 "집에서 놀아요"라고 대답하게 된다고. 그녀의 시어머니께 “저도 아이 인생 선배 노릇하기 바쁜데요?” 라고 말해보지 그러냐, 말하고 싶지만, 사실 터무니 없는 소리라는 걸 알기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각 지역에 흩어져있던 가족들이 만나고, 먼 친척들도 안부를 주고받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적어도 이번 추석만큼은 '뭘 하며 지냈다고 딱히 말하지 못 하는' 전업맘들에게 특히 격려해주는 손길, 말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라는 질문에 “집에서 아이 키웠죠”, “집에서 놀죠.” 라고 별 볼 일 없다는 듯이 대답하더라도 “어려운 일 하고 계십니다.”, “멋지십니다.” 라는 응원이 돌아온다면 좋겠다.
사실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멋들어진 대답을 하고 싶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딱히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집에서 하는 일에 대한 가치가 이미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육아와 집안일에 대해 어필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 멋진 대답을 할 수는 없다. 또 시시한 대답을 꺼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힘든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격려의 말이 그립다. 칭찬받고 싶다.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