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돈이 없다.

by 노콩

내가 아는 언니는 대기업 본사에 다니는 엘리트였다. 곧 승진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회사가 지방으로 옮겨가고, 언니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주말부부를 할 것이냐, 퇴사를 할 것이냐. 언니의 선택은 퇴사였다. 아이가 둘이었고, 너무 어렸고, 혼자 아이들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슈퍼우먼으로 살기엔 언니 자체가 이미 너무 지쳐있었다.


퇴사 후 제일 먼저 바뀐 건 화장품 라인이라고 했다. 예민한 피부였고, 평소에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고가의 화장품도 잘 사서 바르고 했는데, 전업으로 돌아선 후엔 저가 화장품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했다. 두 번째로 바뀐 건 남편 카드로 뭔가를 살 때 한 번 더 고민해보게 된다고 했다. 구매 내역이 곧바로 남편에게 문자로 전해질 것이니, 이것이 합리적인 소비인지에 대한 해명 또는 당위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치킨을 주문할 때 가장 고민이 된다고 한다. 엄마가 손수 음식을 만들어 아이에게 해 주지는 못 할망정, 편하게, 배달음식으로 한끼 떼우려 하다니. 이런 비난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번 편은 조금 더 전업맘에 한정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회적으로 말하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겪게 되는 심리적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전업맘들이 자신에게 쓰는 돈을 무척 아낀다는 사실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물론 모든 엄마들이 다들 그렇지만) 그런데 왜 일까? 아이들 교육비가 너무 많이 나가서일까? 남편의 월급이 쥐꼬리라서 그럴까? 사실 그 마음속엔 ‘내가 번 돈이 아니다’라는 게 있다. 남편이 번 돈이다. 그러니 늘 빚을 지는 마음으로 돈을 쓰게 된다. 뭘 사도 불편하고, 아끼지 않으면 왠지 사치하는 헤픈 여자가 된 것 같다. 그나마 주식을 하거나 부동산 투자에 능통해서 이익을 낸 경우엔 좀 낫다. 그게 아니라면 보통의 전업맘들은 눈에 불을 켜고 가격 비교를 하고, 온갖 쿠폰을 끌어다 쓰고, 특가나 타임세일을 활용해 뭔가를 구매했을 때 그나마 돈 번 것 같고, 안도감을 느낀다.



그런데 ‘남편이 벌어온 돈’ 이 말에는 함정이 있다. 남편 명의의 통장에 꽂히는 돈이니까 남편만 쓸 수 있는 돈일까? 궁극적으로 남편은 왜 돈을 벌어오는가? 가계를 위함이 아니던가. 집안의 경제적 상황을 위함이 아니던가. 말하자면 그것은 그의 역할이라는 뜻이다. A는 나가서 돈을 벌고, B는 아이 키우고, 집안 가꾸고, 안정감을 주고. 말하자면 A, B는 각자의 역할에 맡게 살아가는 것이다. 상하관계도 아니고 주체성 없이 딸려 붙어 있는 종속관계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남편이 벌어온 돈 = 내가 번 돈이 아니다 = 나는 쓸 때 부채감을 가져야 한다 라는 등식을 세우지 말자. 남편이 벌어온 돈 = 남편이 자기 역할 다 한 것 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전업맘은 돈을 쓰든 아끼든 주체성 있게 가정을 위해 노력하면 된다.


남편의 출근복이 필요하고, 아이의 등교 옷이 필요하고, 엄마의 외출복도 필요하다. 남편이 직장동료와 술 한 잔 할 수 있고, 아이가 친구들과 군것질 할 수 있고, 엄마가 약속이 생겨 외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건 모두 집안의 경제적 흐름이다. 집안 구성원들이 살면서 쓸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부분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등식을 꼭 '엄마' 라는 말 앞에서 '=' 이렇게가 아닌'≠' 이렇게 연결시키는 분들을 제법 보게 된다. 나는 전업맘이라고,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업맘들이 너무 주눅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쓸 때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의 역할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거라서 증명이 어렵다. 하지만 잘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써 보자, 그 돈. 부채감 따위 던져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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