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여자는 밥상 들고 문지방 넘으면서 12가지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 당시 여인들의 생각을 잠시 들여다보면 이런 식일 것이다.
'아! 방에 걸레가 그대로 있구나. 안 치웠다고 어머님께 혼나겠다. 이따 빨래를 해야 하는데 개울물은 녹았을까? 그러고 보니 반찬을 다 챙겨왔나? 에고 나물 하나 담아 놓고 안 가져왔구나. 그런데 서방님은 어디 갔지? 아휴 오늘따라 밥상이 무겁네.' 등등등.
놀랍게도 여자들은 이 생각들을 한순간에 파바밧 해버린다. 옛날에도 지금도.
남자들은 아니 남편들은 그런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하긴 설거지를 시키면 행주를 빨지 않고 그대로 꿍쳐놓거나, 아일랜드 식탁 위에 따로 있던 냄비 뚜껑은 씻지 않는 사람들이니 여자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냄비 설거지하면서 뚜껑 어디 있지? 이런 생각이 안 드나?)
아무튼 그래서 그럴까? 요즘 엄마들은 교육도 다방면으로 잘 시키는 것 같다. '엄마표 영어', '엄마표 한글' '엄마표 과학' 심지어 '엄마표 놀이'까지 한다. 아이 노는 것까지 엄마가 가이드하고 컨트롤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일단 내 첫 번째 원인 분석은 '코로나로 학원도 갈 수 없고, 온라인 수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때문이다. 그런데 아이 실력이 형편없는 게 자꾸 눈에 띈다. 그러데 애는 공부는 개코도 안 하고 게임과 유튜브에만 목을 맨다. 그러니 엄마가 손목 잡고 애를 책상 앞으로 끌고 올 수밖에 없다. 일단 문제집은 샀는데 뭘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막막하다. 그래서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교육 관련 단톡방이나 엄마들 카페에 들어가 정보를 찾아본다. 다들 훌륭하다. 어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지. 반성하며 몇 가지 방식들을 아이에게 적용해 본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그 카페나 단톡방에서 했다는 식으로 아웃풋이 안 나온다. 이상해서 이번엔 교육 전문 유튜버들의 컨텐츠를 찾아본다. 그들이 제시하는 노하우는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영상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 이들도 자극적이게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화법을 쓴다. '절대 이러면 안 된다!' '반드시 이건 해야 한다!' 그러면 그 말 속에서 허우적대며 엄마는 자괴감을 갖고, 반성하고, 꼭 하라는 건 진짜 꼭 하려고 눈에 불을 켠다. 그러다 보면 해야 할 게 많아지고 엄마도 아이도 지친다. 부담스럽다. 하~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두 번째 원인 분석은 ‘과거의 학습’이다. 지금의 젊은 엄마들은 이미 사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다. 어릴 때 학습지로 한글 공부를 했고, 학창 시절 국영수 학원은 기본으로 다녔고, 과외도 당연하다. 심지어 영어유치원 출신자도 있고 해외 조기 유학파도 많다. 공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아는 세대. 그래서 자기의 아이는 좀 일찍 시작해서 그 과정을 수월하게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글, 영어, 수학을 처음 시작하는 연령이 많이 어려졌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사교육장이 결코 옛날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영수로 만족할 수 없게 새로운 판이 짜져있다. 먼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문해력. 국어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어휘력을 늘리기 위한 한자가 같이 주목받고, 최근엔 국어문법까지 가르친다. 작문과 논술, 토론도 전부 국어 영역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교에서 줄넘기 등급제를 한다며 입학 전에 줄넘기 학원도 다녀야 하고, (이런 열풍에 학교 줄넘기 등급제가 사라진 곳도 있는데 줄넘기 사교육은 안 사라졌다) 3학년 때 한다는 생존수영을 대비해 1~2학년엔 수영도 배워야 한다. 예체능은 고학년이 되면 할 시간이 없으니 미술, 피아노, 태권도도 다녀야 하고, 초등 5학년이 되면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나온다고 하니 매일 매일 연산도 해야 한다. 아 참 코딩교육도 있다. 우리 아이는 AI 시대를 살아갈 미래 인재가 아닌가.
그뿐이랴. '아이의 정서'도 생각해줘야 한다. 자존감, 긍정성, 창의성 등등. 그런데 아이 자존감을 생각하니 소리도 못 지르겠고, 공부 못 해도 못 한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아이에게 늘 긍정적 표현을 하려고 애 쓰고 그러다 힘들면 오은영 박사님의 프로그램을 죄다 돌려본다. 볼 때는 '아하~' 감탄하며 반성하고 기록하지만, 그것을 매일 적용하기가 어렵다. 제대로 못한 날은 '내가 부족한 엄마구나' 하면서 자는 아이 앞에서 '미안해~'를 연발하며 운다.
정말 요즘 엄마들이 이 모든 걸 다 하고 있느냐 물어볼 것이다. 그렇다. 앞서 말했다시피 엄마는, 여자는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멀티 플레이어들이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지치는 건 맞다. 힘들고 어려운 것도 맞다. 그 많은 과제들을 비집고 놀기도 해야 하니 오죽하면 ‘엄마표 놀이’까지 나왔겠냔 말이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Pixabay) https://pixabay.com/
그러면 쉽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하지마. 엄마들이 너무 나서니까 그렇지.
그럼 이런 에피소드는 어떨까? 내가 아는 지인의 이야기다. 너무나 창의적이고 활동적이라서 스스로 책 만들고 발레도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어 첫 시험을 봤는데 그 성적이 가히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원을 보내려 했더니 그 연령에, 그 아이 수준에 맞는 학원이 없다고 하더라. 그 아이 수준에 맞추면 연령이 어려지고, 연령에 맞추면 수준이 높은 것이다. 이 아이는 결국 고액을 들여 과외를 하거나 홈스쿨링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땅덩이가 좁고, 인재가 큰 재원인 나라다. 그러니 경쟁이 필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은 너무 과도한 경쟁 속에 있다. 그 경쟁을 뒤로 하고 아이의 창의성과 재능만을 믿고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경쟁에 고지는 점령하지 못 하더라도 그 끄트머리는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공교육에서 벗어나 홈스쿨링을 하고, 대안학교를 찾고, 해외로 이민 가 버릴 수 없기에 나는 서글프지만 ‘할 일 많은 엄마’라는 선택을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답답한 쳇바퀴를 돌고 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