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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Nov 10. 2021

‘나는 누구일까요?’ 나다움에 대한 고민, 5학년 일기

 5학년 남자아이 승휘는 일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아이다. 말하자면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다. 정해진 틀에서 조금씩 엇나가려는 느낌. 승휘에게서 받은 에너지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승휘가 내민 글들은 달랐다. 너무나 모범생다운 글들이었다.      


 승휘는 논술학원도 다니고 있었고, 학교에서 내주시는 ‘주제에 맞는 글쓰기’ 숙제도 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글쓰기 경험이 많아 보였다. 그런데 글에서 승휘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뭐랄까. 모범 답안지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쓴 글에는 ‘능력만으로 사람을 뽑을 수 있어 장애인이나 다른 핸디캡이 있는 사람에게도 기회가 있어 좋다.’는 내용으로, 독도에 대해 쓸 때는 ‘독도는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우리나라 땅이었으니, 우리 땅이라고 많이 홍보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모두 맞는 말이고 심지어 논리적이다. 그러나 그 글이 기억에 남지 않고, 재미도 없었다.     


 마침 승휘는 ‘롤 모델’을 소재로 글을 써오라는 학교 숙제가 있는 상황이었다. 숙제도 할 겸, 코칭도 할 겸 우린 그 소재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봤다. 아이는 롤 모델의 개념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너의 롤 모델이 누구냐 물었더니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그런데 롤 모델이 꼭 있어야 해요?’였다. ‘그렇지!’ 이제야 승휘다운 말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롤 모델이 꼭 있어야하는가?’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롤 모델이 꼭 있어야 할까요? 내가 그냥 나의 롤 모델이 될 게요!


 롤모델이 없으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만 결국 나에게 맞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 승휘의 온전한 가치관이 아닐까 싶다. 이제 곧 사춘기가 될 나이라 그런지 승휘는 ‘나다움’에 대한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러나 그 생각은 탐구보다 ‘정립’에 가까웠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 보다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 쪽에 더 가까운 느낌이랄까. 자신감과 자기애가 충만한 아이였다.     


 승휘와 어머니의 관계를 보니 어머니가 승휘의 생각이나 주장을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제스처를 많이 보이셨다. 이런 양육 환경이 지금의 승휘 모습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승휘에 대해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긴 머리카락’이다. 승휘는 머리를 풀면 거의 허리에 닿을 정도로 머리가 길다. 열두 살 남자아이인데도 그렇게 머리를 기를 수 있었던 것은 승휘 혼자만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다. 그 부모의 지지와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아이에게 무엇보다 좋은 글쓰기는 바로 주장하는 글쓰기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고,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본인만의 시선으로 볼 줄도 안다. 아주 엉뚱하거나 애매한 소리를 하지도 않는다. 나름의 논리도 있고 가치관도 있다. 나는 승휘에게 글쓰기 전에 메모를 하라고 팁을 주었다. 특히 주장하는 글은 주장의 근거를 다양하게 말해주는 것이 좋다. 생각나는 주장의 근거를 키워드 중심으로 메모하고 글을 쓸 때 참고하면 놓치는 것이 없다. 이번 ‘롤 모델’을 소재로 쓴 글에도 롤 모델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 없으면 어떻게 될까? 키워드 중심으로 메모를 했다.              

 

인터뷰하듯이 질문을 적는 것도 좋아요. 그 자체가 글의 구성이 될테니까요.



 나는 승휘에게 앞으로도 주장하는 글쓰기를 많이 해보라고 권했다. 승휘에게는 감성적인 글쓰기 보다는 그편이 더 맞아 보였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반짝반짝 눈이 빛나던 아이. 스스로의 중심을 가지고 올곧은 성인으로 자라나길 응원한다.           




고학년의 ‘주장하는 글쓰기’는 ‘정반합’의 논리로 메모부터 하세요.     


먼저 자신의 주장을 정하세요. 그 주장과 반대되는 의견도 적으세요.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적으세요.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에서 수용할만한 부분은 없는지 찾아보세요. 수용할 부분을 수용해서 새로운 논리를 만들든지, 아니면 수용할 부분을 인정은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주장이 더 좋은 이유를 적든지 해서 마지막 ‘합’을 정리합니다. 이때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면 함께 씁니다. 여기까지가 구성 잡기입니다. 이제 이 메모를 보면서 글을 써보세요. 훨씬 논리적인 글쓰기가 완성될 것입니다.




승휘만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재밌었던 코칭 시간! '나다움'을 잘 찾아가는 승휘 모습이 멋지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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