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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Dec 23. 2021

기모 옷을 안 입겠다는 아이, 입히고 싶은 엄마.

 요즘처럼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고 있을 때 아이의 감기에 예민해지는 것이 엄마다. 아이가 콜록 기침이라도 하면 학교도 못 가고,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무조건 병원에 가서 감기약부터 받아와야 한다. 그러니 아이 옷을 더 따뜻하게 입히고, 목수건을 두르게 하고, 핫팩을 쥐어주며 유난스럽게 아이의 건강을 챙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는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복도 안 입겠다, 패딩도 안 입겠다, 따뜻한 기모 옷은 절대 안 입겠다며 손사례를 친다. 속이 타들어 간다.  

   

 그런데 며칠 전 기어이 우리 아들이 내 머리 뚜껑을 열고 말았다. 사건 발생 하루 전, 우리 아들은 친구네 집에서 잤다. 친구 집에서 자고 다음 날 바로 학교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어 아이 책가방이며 옷을 이미 전날 보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사건 당일 오전 8시 58분. 등교가 임박한 시간에 아들 친구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티셔츠를 입지 않겠다며 울고 있다는 것이다. 그 티셔츠는 기모가 있기는 하지만 며칠 전에 군소리 없이 잘 입었던 옷이다. 그런데 왜 하필 남의 집에서 그 옷이 싫다며 울고, 그 집 옷도 안 입겠다 그러고, 지각까지 하냔 말이다. 나는 전화로 아이를 다그쳤다.     


 “지금 엄마는 새로운 티셔츠를 가져갈 수 없어. 그 티셔츠 안 입으면 벗고라도 학교에 가야 해. 지금은 무조건 학교부터 가.”     


 애먹었을 아들 친구 엄마한테도 미안했고, 그 고집을 피우며 학교를 지각한 아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오늘은 기필코 이 녀석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난 억지로라도 아이에게 기모 옷을 입힐 수 있어. 그렇게 할까? 아니면 아이의 요구를 무한정 들어줘야 할까? 내가 아이한테 맞춰주니까 얘가 더 이러는 거 아니야?”     


 나는 남편에게 전화해 의견을 물었다. 사실 의견을 묻는 모양새였지만 내 다짐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아이의 성향을 존중해 맞춰주었으면 좋게다고 말했다. 남편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신이 직접 안 겪어봐서 그래.’     


출처 : 픽사베이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 문제를 또 물어보았다. 마침 영어학원에 가는 날이라서 원어민 선생님과 수업을 같이 듣는 동료들에게 물어보았다. 다들 조심스러워하면서 그래도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요.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인생 살면서 자기 하기 싫은 것도 해야지. 그런 걸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내 말에 원어민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Mom has too many thoughts.”     


 그 말을 듣는데 ‘아, 내가 너무 복잡했구나’ 싶었다.     


 아이는 그냥 기모 옷의 촉감이 싫은 것이었다. 그 옷을 입었을 때 하루 종일 불편하니까 그게 싫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거기다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는 너무 큰 이유를 갖다 붙이고 있었다. 어쩌면 ‘이 녀석이 내 말을 안 들어?’하는 마음도 갖다 붙였는지 모른다. ‘이 녀석 버릇이 없네!’ 괜한 분노도 한 주먹 넣었나 모르겠다. 그냥 아이가 입을 수 있는 옷을 꺼내놓으면 될 일이었다. 쉽고 간단했다.     


겨울에 기모 옷을 빼고 어떻게, 뭘 입힌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아이 서랍의 옷을 모두 꺼냈다. 그리고 아이한테 좋은 옷과 싫은 옷을 분류하라고 했다. 지난 추석에 장만한 새 옷이 싫은 옷으로 분류되었다. 아까웠지만 참았다. 수없이 입고 세탁해서 후줄근해진 옷이 좋은 옷으로 분류되었다.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참았다. 얇은 티셔츠가 좋은 옷으로 분류되었다.      


 “이 옷은 너무 얇아. 감기 걸려.”      


 그래도 아이가 입겠다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럼 이 옷은 꼭 조끼나 내복이랑 같이 입어.”     


 아이가 그러겠다고 했다. 합의점을 찾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의 요구를 마냥 받아줘야 할지, 아니면 그건 아니라고 가르쳐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 있다. 육아서에서는 위험한 것, 타인에게 피해주는 것 등이 아니면 훈육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내 가치관과 부딪칠 때 고민이 된다. ‘옳은 행동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이 느껴질 때도 그렇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이렇게 타인의 시선을 무시해도 되는 건가?’ 갈등 된다. 불안감도 한몫한다. ‘이러다 애 버릇 나빠지는 거 아니야?’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엄마는 생각이 많다지만, 그 생각들을 안 하고 살 수도 없다.     


 아무튼 나는 이번 ‘기모 옷 사건’은 아이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서랍장에 아이가 입을 수 있는 옷이 몇 벌 안 되지만 그래도 매일 아침 싸울 일은 없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조끼와 내복이라는 절충안도 확보했다. 일부 내 요구가 반영된 옷도 있어서 기뻤다.     


 “엄마는 이제 마음이 편해.”

 “나도.”     


 아들과 내가 마주 보고 웃었다.     


우리 아들의 서랍장. 몇 벌 안 남았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지만, 육아처럼 이렇게 답 찾기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육아서에서 시키는 대로 해도 안 되고, 오은영 박사님의 해법도 무조건 통하지는 않는다. 선배 맘의 조언도 아이마다 다르니 답이라고 할 수 없다. 내 아이와 나와의 문제는 결국 둘이서 지지고 볶고 난리를 쳐야 찾을 수 있다. 첫째 아이 해법이 다르고, 둘째 아이 해법이 다르다. 그래도 찾아야 한다. 맨땅의 헤딩하는 심정으로 수없이 시행착오를 하고, 머리 뚜껑이 수백 번 열려 ‘아이고 두야~’하며 찾아야 한다. 평화로운 가정을 위해 엄마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가족원들은 알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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