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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Dec 24. 2021

엄마는 크리스마스 선물도 혼자 준비한다.

 요즘 엄마들을 만나면 이런 대화가 주를 이룬다.     

 

“그 집 아이는 아직 산타 믿어요?”     


 내가 산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내 위에 언니가 있는데, 크리스마스 다음 날 언니가 엄청난 비밀을 밝히는 것처럼 내게 귓속말을 해주었다. 어젯밤에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 놓는 것을 보았다고. 그때 난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언니는 자신이 본 것을 더 또렷하게, 상세하게 전하며 자신이 말이 맞다는 것을 강조했다. 동심파괴의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때 우리 언니는 6학년이었는데, 그때까지 믿었던 걸까?)     


 9살 우리 아들은 요즘 산타가 어떻게 각 가정마다 선물을 배달하는지, 그 시스템에 대해 궁금해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각 가정의 엄마아빠의 손을 빌려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엄마 아빠가 놓는 게 아닐까?”     


 그 말을 했을 때는 조금 뜨끔했다. ‘엄마아빠=산타’까지의 등식은 세우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엄마아빠가 이 사건(?)에 연류되어 있다는 느낌은 드는 모양이다. 그래서 산타한테 받고 싶은 선물을 얘기할 때도 속으로 기도하다가     


 “아, 소리 내서 얘기할까?”      


 이래서 나를 무척 당황하게 했다.      


 “아니야~. 그런 거 상관없어.”     


 라고 했지만 너무 티를 낸 건 아닌지 몇 번씩 그 상황을 되짚게 되었다. 나는 이 말도 덧붙였다. 산타는 꼭 소원대로 선물을 주시지는 않는다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생각하시기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선물을 주시는 거라고. 왜냐하면 나는 그때 이미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두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트렁크에 선물을 숨겨두었다



 아무튼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서, 나는 혼자 고민하고, 혼자 주문하고, 혼자 포장지를 사러 다녀왔다. 큰 상자 두 개를 혼자 포장할 때는 갑자기 속이 터져서 신랑을 호출했다.      


 “이것 좀 같이 하지?”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같이 상의도 했던 것 같다. 실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산타클로스 복장을 사서 아빠에게 입히는 이벤트도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가 커갈수록 이 문제는 엄마 혼자만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산타클로스 코스프레는 이제 엄마 혼자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뿐만이 아니다. 아이가 학교를 결석할 때는 ‘교외체험학습신청서’를 내야 한다. 다녀와서는 ‘결과 보고서’도 작성해야 한다. 코로나가 극성인 요즘엔 기침만 해도 아이가 학교를 가지 못 하기 때문에 ‘등교중지 학생 보호자 확인서’를 작성해야 하고 ‘가정 내 건강관리 기록지’도 매일 매일 써야 한다. 집안의 행사가 있을 때 아빠는 본인 휴가 내는 것만 신경쓰면 되지만, 엄마는 아이 것도 있다는 걸 항상 명심해야 한다. 간혹 학교에 서류 내는 것을 잊어버렸다가 뒷수습하는 일도 여러 번이다. 학원 스케줄 조정은 또 어떻고.     


 아무튼 이런 일도 있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7천 명을 찍던 때에 한 엄마가 동생 결혼식 때문에 서울을 다녀와야 한다고 했다. 지방 행정기관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방문하지 말라고 자제 문자를 보내던 시기라서, 그 엄마는 서울을 가야 한다고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기가 많이 주저되는 모양이었다. 가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데, 괜히 그런 말씀을 드렸다가 이 시기에 서울을 간다고 본인과 본인 아이들을 이상하게 보시지 않을까 무척 염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음을 신랑하고 나눴다가 핀잔만 들었다고 한다.     


 “뭘 그런 걸 고민해. 그냥 말하면 되지.”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다르며, 같은 상황도 어떤 태도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 법이다. 그 말과 행동을 고르는 중이었는데 남편이 그렇게 핀잔을 줘서 무척 속상하다고 말했다.     


 “남자들은 이런 거 전혀 몰라요!”     


 정말 그렇다. 아이와 관련된 일 처리 하나하나, 함께 파생되는 감정 처리까지도 모두 엄마 몫이다. 남편은 모른다. 사소하다 생각할 수도 있고, 작은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일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고, 그걸 엄마가 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잊고 있는 것 같다.     


출처  :픽사베이


 엄마들은 무수히 많은 일을 하는데 언제나 그 평가는 ‘하잘것없는 것’ ‘별 볼일 없는 것’이라고 돌아온다. 그런 하잘것없는 일은 혼자 해결하라는 식의 주변 반응은 서럽기까지 하다. 이런 마음을 누가 알고 있을까?  

   

 아이처럼 선물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생색을 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알아달라는 말이다. 엄마들이 하는 소소하고, 눈에 띄지 않고,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해서 하고 있는 일들. 생각지 못한 그 많은 일을 책임지고 하고 있는 사람이 엄마라는 사실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고맙다는 말까지 들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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