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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경 Apr 29. 2024

자주 깊은 얘기를 나누면 안된다

공부의 끝(11)

A는 제자였다.

군대에서 내가 쓴 이전 책을 읽고, 나에대해 인상적이었나 보다. 학교 예술 철학 강의에서 “예술인은 어떻게 창작하는가?”를 주제로 강사를 초빙하는데, 당시 학생회장이였던 A는 그 많은 명사들을 뒤로 하고, 나를 추천했다.

특강 후, 나는 감사의 의미로 언제 밥을 사겠다고 문자를 보냈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A는 마침 콘서트 표가 있는데 같이 보러가자고 했다. 가서 보니, 무려 자신의 부모님이 속해 있는 합창단 공연이었다. 그가 의도 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는 그와의 1:1 첫 만남에서 그의 가족들을 만난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A는 바로, 사귀자고 반지를 들이 밀었다.  나는 그의 앞 뒤 재지 않은 그 저돌성이 마음에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런데 성격은 극과 극이다. 긴 대화를 나눈 적이 별로 없다. 대화가 길어지면 싸우게 된다.

뭐라고 할까? 상담으로 치면, 그와의 대화는 흡사 ‘합리적 정서 행동 치료’를 받는 기분이랄까? 사건(A)을 이야기 하면, 나의 비합리적인 생각과 사고(B)에 대한 결과(C)에 거침없는 논박(D)이 들어온다.

“그게 사실이야? 그 생각의 근거가 뭐야? 실제 그것이 과연 가능해? 그 생각이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확실히 그는 T다.

그 순간은 무척이나 기분이 나쁜데, 문제는 뒤돌아서서 곱씹어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미쳐 보지 못한 이면의 예리함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똑같은 F나 P끼리 공감하고 맞장구 쳐주는 대화에서는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이 있다.

‘그래서 같이 있는 것일까?’

다만 피곤해서 자주 깊은 얘기를 나누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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