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끝(20)
눈이 아프다. 책 볼때 겹쳐 보이고, 아리다. 라식 한지는 20년이 넘었는데, 이제는 강의나 수업때 안경을 쓰지 않으면 흐릿해서 안보인다. 집중이 안된다. 오늘 같이 연강이 있고 피곤한 날에는 더 심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물안에서(In Water)’를 보면 전체 화면이 아웃 포커싱되어 나온다. 초점이 맞지 않아 대상을 뚜렷이 볼 수 없다. 그도 시력문제로 대학 교수를 사임했다는데, 의도했던 의도하지 안았던, 지금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감정이입이 잘 된다. 인상적이었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불명확한 세계’
용을 쓸 수록 눈에 힘을 더 주게 되어서 그런지, 통증이 더 심하다. 청력도 예전같지가 않다. 코로나때는 마스크를 써서 그런 줄 알았는데 마스크 없이도, 학생들의 작은 발표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체력으로 논문을 쓴다는데, 첫 학기부터 걱정이라고 했더니, 오늘 수업시간에 사진 담당 수업 교수님이 겁을 주었다. 지금 석사학생들에게는 절대 박사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친구 하나가 박사 논문을 쓰다가 생사를 달리 했단다.평소 지병도 없는데다가 자식이 둘이나 있었는데, 오랫동안 이핑계 저핑계 대며 미루던 학위 논문을 이번에는 통과 시켜준다했던 교수가 심사 며칠을 앞두고 다시 전반적인 수정을 요구 했고, 친구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쓰러진 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박사학위가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하냐며 반문하였다. 혼자 힘만으로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 하였다. 누구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면서 앞이 보이지 안았다는 둥, 논문 심사때 응급실에 실려갔단는 둥, 담당교수가 무리한 상납을 요구했다는 둥, 이런저런 소문들이 흉흉한데, 그만큼 힘들다는 뜻을 반영하는 것일테다.
처음 지도교수님의 말이 생각났다.
박사학위는 머리도, 노력도 아닌 개인의 ‘의지’로 한다고.
‘과연 나의 의지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박사학위를 꼬옥 따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푸코의 박사학위 논문이 <광기의 역사> 였다고 하는데, 그 정도 완성도를 요구하는 거라면, 솔직히 자신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