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화 우리 집엔 귀신이 산다

<달콤한 간택일지 2>

by 노란까치


꿀복이도 꿀밤이도, 이 두 녀석의 영역 세계는 고작 29평이 전부인데,

매일 이곳저곳 다니며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고 성실히 루틴을 잊지 않고 반복한다.


나는 가끔 유튜버 중 다묘를 키우는 집들을 보면, 어떻게 아이들이 영역 다툼을 할까 생각해 본다.

고양이는 자기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서열이 높고 성격이 예민한 친구들은 자기 영역에 침범하면 난리가 나기 때문에, 싸움도 잦고 그 자리를 쟁탈하려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20240124_211235.jpg


그런데 우리 집 두 녀석들은 일방적으로 꿀복이의 희생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두 녀석의 치열한 싸움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 영역들을 나눠주려고 밥도, 물도, 화장실도 처음엔 다 나눠 영역을 분리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둘이 그냥 서로 먹고 싶은 거 먹고, 싸고 싶은 데 가서 싸고 이런 느낌이라 자동급식기 외에는 두 개로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는 상태였다.


둘은 어떻게 영역을 나누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둘의 행동 패턴을 집중해서 지켜보았다.

꿀복이 같은 경우는 높은 곳보다는 거실이 가장 잘 보이는 식탁 의자를 상당히 선호하고, 특정한 패브릭 소재나 스크래처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걸 좋아한다.

반면 꿀밤이는 높은 곳을 선호하고, 소파나 소파 헤드 위쪽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한다.


우리 집은 곳곳에 스크래처를 숨숨집처럼 숨겨놓고 다양한 장소에 배치를 해두었는데, 보면 꿀복이는 크고 넓고 거실에 있는 스크래처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하지만 꿀밤이는 숨숨집 안에 있는 스크래처를 잘 이용하고, 루틴처럼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좀 더 다양하게 놀이를 즐기는 편이다.


20240124_164541.jpg


어느 날, 내가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
그래서 내가 실수로 외출하면서 안 끄고 나갔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다음 날, 카페를 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또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내가 요즘 건망증이 있나? 자꾸 불을 켜놓고 다니네."

혼잣말을 하고 불을 끄려고 스위치를 누르려 다가갔다.

그 순간 이상함을 감지했다.


우리 집 거실 조명은 5가지 조명으로 되어 있어서 컨트롤하는 스위치 버튼이 5개가 있다.
나는 주로 2, 3번 조명을 사용하는데, 현재 1, 4번 조명이 켜진 것이었다.

뭔가 이상했지만, 내가 건망증이 있어서라고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넘겼다.

그리고 그날 밤이었다.

잠을 청하려는데 거실에 불이 순간적으로 켜졌다 꺼졌다 했다.
깜짝 놀라긴 했지만, 애들이 현관 쪽 센서로 가까이 가면 자동으로 불이 켜지기 때문에, 현관 쪽 센서가 작동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남편은 새벽에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늘 먼저 일어나는데, 그날 출근 전에 자고 있는 나에게 거실 불은 끄고 자라고 이야기하며 출근했다.

나는 잠결이지만 상당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거실 불을 다 소등했는데,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말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남편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아까 출근 전에 거실 불 끄고 자라고 한 거 꿈 아니지? 여보가 말한 거 맞지?"

"응, 맞아! 아니 자고 일어났는데, 거실에 모든 조명이 다 켜져 있던데?"


그때부턴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며칠 동안 있던 거실 조명 미스터리를 남편에게도 이야기했다.


"사실은, 이틀 전부터 집에 돌아오면 거실 불이 켜져 있더라. 이거 애들이 젤리(육구)로 눌러서 켜는 거 아냐?"



20240815_102026.jpg


이야기를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게 아니니 의심만 할 뿐 어느 것도 확인된 바는 없었다.
우리 집에 귀신이 사는 것도 아니고, 귀신이 어둡다고 불을 켜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꿀밤이가 소파 헤드 위를 다니면서 총총총총 걸어 다니며 캣워크처럼 다니는 길이 있다.
거기가 꿀밤이만의 영역인진 몰라도 꿀복이는 그곳을 안 다니는데, 꿀밤이는 그곳을 상당히 좋아했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들었는데, 순간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20240710_160908.jpg


꿀밤이가 거실 벽 조명 센서를 혀로 핥아서 껐다(off) 켰다(on) 하는 게 아닌가!

내 눈을 의심했으나, 꿀밤이는 여러 번 해본 솜씨였다. 센서에 꿀을 발라놨는지 능숙하게 혀로 또 핥으며 센서를 이리저리 켜고 있었다.
남편에게는 말해도 믿지 않을 것 같아 동영상으로 촬영까지 해두었다.

며칠 간의 사건 미스터리가 해결되었다.


범인은 바로! 꾀도 꿀밤!

또 이 녀석이었다. 고양이 혓바닥에도 센서가 반응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꿀밤이의 새로운 개인기를 보는데, 한편으로는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같이 꿀밤이가 거실 센서를 루틴처럼 핥고 다녔을 생각을 하니 말이다.



20240601_230202.heic


그날 이후로도 집에 들어오면 불이 다 켜져 있었다.


"또 꿀밤이가 on/off 작동했구나! 우리 집 전기세 귀신이구나!"

하면서 쓰담을 해줬다.


오늘도 다채로운 고양이들의 일상이 나를 웃게 한다.


keyword